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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구경

괴테 하우스에서-1

sanna 2006. 10. 14. 01:00

                                                                                   <실물 크기의 괴테 초상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이 대목이다.

아주 오래, 그리고 어느 한 곳에 정착해야 적당한 지금도 여전히 질퍽거리며 헤매는 나는, ‘파우스트’에서 신이 했던 이 말을 변명거리로 삼아 두리번거리는 스스로를 위로한다. 언젠가는 ‘그 무언가’를 파우스트처럼 ‘내 힘’으로 찾게 될 것이라고…. 물론 괴테가 나처럼 헤매는 인간들 변명거리로 쓰라고 이 말을 만들어낸 건 아니겠지만....-.-;
그나마 이전보다 나아진 점이 딱 하나 있다면, 메피스토텔레스처럼 알아서 척척 해결해주는, 기대고 있기만 해도 늘 길을 밝혀줄 큰 존재가 내게 있다면 차라리 영혼을 팔아도 좋겠다는 바람을 접은 것 정도랄까…. 그것이 사람이든 이념이든, 그런 존재가 있다고 착각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큰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문제를, 어떤 이념도 내가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을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 자신의 삶은 자신만이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부끄럽게도 꽤 늦게 깨달았다.


어찌됐든, 그런 연유로 난 괴테의 책을 몇 권 읽지도 않았으면서 괴테에 대해 괜한 호감을 갖고 있다. 그러니 얼마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출장을 갔을 때 내 첫 번째 관광 목적지는 당연히 괴테의 생가인 ‘괴테하우스’였다.

괴테의 생가는 2차 세계대전 때 완전히 파괴됐지만 전후 복원됐다. 독일 복원 기술의 경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니, 실제 모습과 거의 비슷한 정도로까지 복원된 모양이다.

괴테하우스와 박물관이 붙어있는 입구엔 축구공을 든 괴테의 간단한 입상이 서 있다. 아마 월드컵 때 설치된 조형물 같다.

내가 잘못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집은 괴테의 조부모가 산 집인데 괴테 할머니가 이 집을 산 가장 큰 이유는 현관 바닥의 포도주 보관 창고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마루로 막혀있지만, 이 바닥 아래 포도주 창고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었다고 한다.
집에 그런 지하실 혹은 다락방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난 미로, 숨겨진 공간이 없이 반듯반듯하고 훤한 아파트의 획일적 배치가 너무나 싫다.

괴테네 집은 아버지가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아 평생 황실고문관이라는 명예 칭호외에 직업이 없이도 살 수 있었다고 하니, 상당한 부자에 상류층 집안이다.

부엌엔 물을 끌어다 쓰는 펌프가 딸려 있다. 당시엔 물을 모두 밖에서 길어와야 했는데 이렇게 집안에서 물을 끌어오는 펌프가 있던 집도 흔치 않았다고 한다.

각 방은 색깔 별로 통일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아끼던 노란방, 가족이 모여 식사하던 파란방, 과 같은 식으로. 설명을 듣다보니 집이 파괴되기 이전부터 원래 그랬던 것 같다.
파란 방은 식당이자 가끔 괴테의 원고를 필사자가 옮겨 적던 공간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괴테의 어머니가 특별히 아꼈고 ‘바이마르 룸’으로 불렀다는 노란 방엔 괴테의 젊은 시절 초상이 걸려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괴테의 아버지가 아꼈다는 붉은 방이 나온다.
벽지의 문양이 중국풍인데 당시 상류층에선 이런 무늬가 유행이었다고 한다.
방 구석에 촛불이 꽂힌 등이 눈에 띄었다.
당시엔 가로등이 없어 밤에 외출을 하려면 이런 등을 들고 다녀야 했는데 여기서 촛불의 개수가 신분을 상징했다고 한다. 귀족은 3개, 하층민은 1개를 꽂을 수 있었다. 괴테네는 2개이니 상류 시민이라는 표징이겠다.
촛불로까지 존재의 등급을 밝혀야 했다니….


그런 사회는 어떨까 싶다. 그런 사회의 하층민으로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지금 생각하면 억울해서 못살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가 않다.

버트런드 러셀의 책에서 언젠가 읽은 대목인데, 질투는 민주주의와 더불어 생겨난 감정이다.
모든 사람이 타고난 신분에 따라 살아가야 했을 때에는 모든 사람이 동등해야 한다는 관념도 희박했다. 그러니 왜 똑같은 밤길에 내 촛불은 1개인데 저 놈은 2개인가, 와 같은 질투, 부당하다는 감정으로 스스로를 들볶을 일도 없었을 거다. 사람은 무슨 수를 써도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다고 여기는 행운에 대해서는 질투하지 않으니까.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구별이 신이 정해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면,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질투하지 않는다. 운명적으로 정해진 신분의 구별이 없는 사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회, 내가 노력하고 적당한 운이 따라준다면 타고난 부자들 못지 않은 부를 축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에 이르러서야 질투라는 열정이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혹은 불행하게 만든다.

평등하고 질투하는 사회, 불평등하고 질투없는 사회, 어느 쪽이 더 나을까....생각하다보니 우리가 사는 사회는 불평등하고 질투하는 사회 같다. 최악이다....-.-;

 

붉은 방 옆엔 괴테의 아버지가 수집한 미술품을 모아놓은 전시실이 붙어있다. 직업 없이도 풍족했던 괴테의 아버지는 사적인 연구와 미술품 수집과 같은 취미생활에 몰두해서 살았다고 한다.
기억나는 설명으로는, 괴테의 아버지는 여느 미술품 수집가와 달리 이미 세상을 뜬 유명한 작가들 대신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오래된 포도주도 좋지만 포도를 수확한 그 해 포도주의 맛을 따라올 수 없듯 미술작품도 그렇다’(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뭐 이 비스무리한 말을 했다고 하는데, ‘검증된 작품의 수집’보다 ‘발견의 즐거움’을 더 높이 쳤던 사람이 아닐까 한다. 이런 게 진정한 애호가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괴테가 태어난 방은 녹색 방이다. 괴테가 유난히 녹색을 좋아했던 것인지, 조금 뒤에 보겠지만 그가 작품을 쓰던 시인의 방도 기본 색이 녹색이다.

괴테의 방에는 그의 탄생과 죽음을 상징하는 문양이 있다.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잘 모른다. 이 방엔 괴테의 세례소식이 실린 신문도 붙어있었다. 괴테는 심한 난산 끝에 태어나는 바람에 괴테가 태어난 뒤 괴테의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아버지? anyway)는 프랑크푸르트 산파(교육인지 출산시 의무 대동인지, 아무튼) 와 관련한 법 개정을 지시할 정도였다고 한다.

에궁~ 집 하나 놓고 뭔 말이 이렇게 많은지 ^^; .....다른 방은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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