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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구경

괴테 하우스에서-2

sanna 2006. 10. 14. 01:12

괴테의 여동생 코르넬리아의 방이다. 괴테와 여동생을 제외하고 네 형제는 어린 시절에 모두 죽었다.
괴테보다 한 살 어렸던 누이동생 코르넬리아는 늘 자신이 없고 스스로를 믿지 못했던 성품이었다고 한다. 괴테의 회고에 따르면 괴테와 마찬가지로 코르넬리아도 ‘자기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했고 될수도 없었던’ 사람이었지만, 코르넬리아는 괴테처럼 예술적 형상화를 통해 내적인 갈등을 풀어낼 통로를 갖지 못한 처녀였다. 그녀는 괴테의 친구와 결혼한 뒤 27세에 세상을 뜨고 만다.
그런 설명을 듣고 봐서 그런지, 초상화 속의 코르넬리아는 어쩐지 자신의 운명을 체념이라도 한 듯 묘한 슬픔이 배어있는 표정을 하고 있다...


가족 음악실에는 특이한 모양의 피아노 (뭐라고 이름이 있던데 잊어버렸다..)와 특이한 가족사진이 있다.

괴테 아버지의 ‘화목’을 향한 노력도 뭔가 예술적이었다. 내가 사진을 잘 못찍어서 흐릿하게 보이는데, 이 그림은 괴테의 가족 모두가 양치기 복장을 한 가족그림이다.
하긴, 지금의 우리도 특별한 기념일에 가족사진을 찍곤 하니, 행복한 한 순간을 정지화면으로 간직하고 싶은 욕구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게 없겠다.
왼쪽에서 세번째 허리 숙여 양을 만지고 있는 소년이 괴테이고, 그 오른쪽이 여동생 코르넬리아다.
그 당시 상류계급 시민들에게도 양치기가 주인공인 목가적 전원생활이 '평온'의 상징적 이미지였나보다. 지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전원생활'을 꿈꾸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사회구조는 다를지언정, 사람들이 살아가며 번잡함과 자연 본연의 모습을 대비시키며 갖는 '근원'에 대한 동경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게 없나보다.
이 그림이 특이하게 보였던 건, 그림 오른쪽 구석에서 놀고 있는 네 명의 아이들 모습이다. (내가 찍어온 사진에선 엉덩이 형체만 흐릿하게 보인다. 왜케 사진을 못찍는지....ㅠ.ㅠ)
이 아이들은 어릴 때 죽은 괴테의 형제들이다. 양치기 복장을 하고 단란하게 모여있는 가족들 뒤에서 아기 천사처럼 벌거벗고 놀고 있는, 일찍 죽은 아이들....이렇게라도 한때나마 가족의 연을 맺었던 생명들의 기억을 그림 속에 박제하고 싶었던 걸까.
화가에게 '죽은 아이들이 네명인데, 어린 천사의 모습으로 뒤에 그려달라'고 부탁하는 괴테 아버지의 심정을 잠깐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여기서부터는 층수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건물이 모두 4개 층이니 3층 아니면 4층이다. -.-;

사진은 괴테 아버지의 서재에 꽂혀있는 낡은 책들이다. 그 당시 실제로 보던 책들이라면, 거의 250년이 넘은 책들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서 있는 책들에게 잠시 경의를 표하다.


사진을 찍다 서가 옆 거울에 나를 박아두고 돌아오다.



서재와 같은 층 복도에 있는 빨래압착기다. 세탁한 침대보를 가지런히 개어 압착기 사이에 넣고 프레스를 하듯 압착하면 다림질을 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는 것.

그거 몇 장 된다고… 하면서 설명을 듣다가 깜짝 놀랐다. 그 당시엔 빨래를 1년에 2,3번 밖에 하질 않았는데 괴테의 집에만 침대보가 144장(놀라서 그런지 이 숫자는 정확히 기억한다~)이 있었다고 한다.
압착기가 필요할 만도 하다. 하도 빨래를 드물게 하던 시절이라, 빨랫감의 숫자가 그 집의 재산 규모를 짐작하게 해주는 척도이기도 했다 하니….

드디어 괴테의 집필실인 시인의 방. 이 방에서 괴테는 시도 쓰고 그림도 그렸다. 괴테는 상당히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다고. 아닌게 아니라 방에 걸려있는 괴테가 그린 풍경화들도 상당히 뛰어나다. 괴테가 직접 스케치한 자기 방의 풍경을 보면 늘 이젤이 놓여있다.

시인의 방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모델이 된 로테의 실루엣이 걸려있다. 실루엣만 보면 꼭 중년부인 같아 별 감흥이 일지 않는다. -.-;

괴테의 집 기행이 대충 끝났다. 꼭대기 층엔 괴테와 코르넬리아가 인형놀이를 하던 상자가 놓여있는 인형놀이 방이 있고, 그 옆엔 전시실이 꾸며져 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7년 전쟁이 발발하고 오스트리아와 연합한 프랑스군이 프랑크푸르트를 점령했을 때 괴테의 집에선 프랑스 군인인 토랑 백작이 한동안 살았다.
그 백작의 지시로 그림을 그리던 화가의 방도 꼭대기 층에 있다. 그 백작이 화가들을 불러 집에서 그림을 그리게 한 덕분에 괴테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꼭대기 층 전시실엔 괴테의 가족 내력을 보여주는 그림, 글들이 전시돼 있다. 대충 훑어보다가 권총 자살을 하는 남자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발견했다. 설명대로 괴테의 가족 내력을 보여주는 그림 중 하나라면,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어느 친척의 그림이겠지. 참 특이한 기록 벽(癖)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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