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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선택의 패러독스

sanna 2006. 11. 30. 00:01
몇 달간 고민해온 어떤 선택의 과제가 있었는데 드디어 결론을 냈다. 후련하다. 뭔가가 뚜렷해지는 느낌….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고민이 없지 않지만, 후회를 할 때 하더라도 일단 마음 가는 대로 따라가자고 결정했다.


고민하던 기간 동안, 변덕을 자책할 만큼 여러 번 생각이 변했다.
하지만 결론을 내린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내가 선택의 이유로 찾으려 애썼던 논리적 근거가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이유를 말로 정리해보려고 애를 쓰지만, 실제 선택에서는 그것의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몇가지 대안들의 장점과 단점, 기회와 위기 등을 종이에 죽 적어보았다. 심사숙고를 한답시고 내 나름의 SWOT 분석에만 몇 주가 걸렸다.

예컨대 대안 A는 장점이 9라면 B는 5였다. 반면 대안 A의 단점이 5라면 B의 단점은 7이다. 이것만 놓고 보면 대안 A를 선택했어야 했다. 한참 동안 그렇게 하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내 선택의 결과는 대안 B다. 종이에 적은 대안 A의 장점은 명쾌한 반면, ‘왜’ 대안 B를 선택했는지를 말로 설명하자면 좀 모호해진다. ...그래도 어쨌건 내 마음이 지시하는 방향이 그쪽인 것을 어쩌랴...
몇 달간 그 사안을 마음 속에 굴리면서, 점점 강렬해지는 느낌은 종이에 적은 ‘분석’이 실제 내 삶의 지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처구니없고 답답하더라도 ‘분석’과 달리 내 마음이 지시하는 방향은 대안 B였고, 나는 그걸 선택하기로 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내가 ‘발견’해낸 ‘이유’들은 때로 나를 속인다.
아래 심리 실험 결과를 읽어보자.


미국 심리학자들이 대학생들에게 모네와 고흐의 그림 각 1장과 만화와 동물 사진 3장 등 모두 5장의 포스터 5개를 평가하게 했다. 절반의 학생에겐 ‘포스터를 고르는 이유를 설명하시오’라고 말했고 그 이유를 공개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른 절반에겐 그런 요청 자체를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학생들은 자신이 고른 포스터를 넣어갈 수 있는 통을 지급 받았기 때문에 ‘내가 고른 그림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와 같은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이유를 설명하라고 지시받은 학생들은 미술작품보다 만화와 동물사진을 고른 경향이 높았다. 왜냐하면 고흐의 작품이 왜 아름다운지보다 어떤 포스터가 왜 귀여운지, 왜 예쁜지를 설명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그 이후 조사 결과 한 가지 더.

몇 달이 지난 뒤 실험자들은 학생들이 고른 포스터에 대해 계속 만족하는지에 대한 조사를 다시 해봤다. 그 결과 그림을 고를 때 취향의 이유를 설명한 학생들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학생들보다 포스터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게 말해주는 건 뭘까. ‘선택의 심리학’을 쓴 미국의 사회행동학자 배리 슈워츠는 "어떤 선택을 할 때 사람들이 그 이유로 가장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이 반드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취향에 대한 이유를 밝혀야 할 때 단어들을 찾으려고 애쓴다. 때로 이들의 어떤 느낌은 전반적 반응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단어로 표현하기 쉬운 것들이 있다. 고흐의 그림보다 만화를 고른 이유를 설명하기 쉽듯이 말이다.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이렇게 명시적으로 표현된 이유들은 결정의 요인으로 크게 작용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말로 표현한 이유들은 뒤편으로 사라지고 분명하게 밝히지 않은 취향만 남게 된다. 분명하게 밝힌 이유들의 두드러짐이 사라지면서 결정에 대한 만족 역시 사라지는 것이다.


…때론 말해지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 느낌, 취향, 직감...그 모든 것을 포함한 내 마음이 지시하는 방향을 믿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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