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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차를 몰고 해본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코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해변의 구불구불한 1번 국도를 따라 내려오는 여정이다. 7년전 쯤 벽 찍고 돌아오는 심정으로 서둘러 차를 몰고 내려온 여행이었지만, 다음에 좋은 사람들과 느린 걸음으로 다시 여행해보리라 생각했던 곳이다.

미국에 오래 머물러 계시던 부모님을 모시고 돌아올 때, 이 코스를 거쳐 돌아올 계획을 세웠다. 캘리포니아의 태양이라면 부모님의 옹송그린 어깨를 말랑말랑하게 펴줄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와 함께.


9일간의 자동차 여행.
가던 날이 장날이라더니, 첫 5일간은 내리 날이 흐리고 비가 왔다. 6년 전 로스앤젤레스에서 잠깐 살 땐 지루하기까지 했던 캘리포니아의 태양이 진면목을 보여준 건 후반부 4일 뿐이다.

9일간의 코스는 캘리포니아 주를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는 길이었다. 거쳐간 곳은 대략 이렇다.  나파 밸리 -> 뮈어 우즈 -> 소살리토 -> 샌프란시스코 -> 몬테레이 & 카멜 -> 피스모 비치 -> 솔뱅 -> 산타 바바라 -> 로스앤젤레스 -> 샌디에고.

성실한 기록자가 아닌 탓에 사진과 기억이 뜨문뜨문하다... 위와 옆의 사진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약 2시간 가량 차를 몰고 갔던 나파 밸리의 와이너리. 나름 멋지다고 생각해서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이렇게 보니 어쩐지 좀 '귀곡산장' 분위기......-.-;

V.Sattui 라는 곳인데, 와인에 별 조예가 없어 그런지, 나는 와인 시음보다 여기서 파는 빵과 샐러드가 더 마음에 들었다.
날씨가 좋을 때 와서 피크닉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점심을 먹고 시음해둔 와인을 사러 돌아와보니 비가 온 직후라 좀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사람들이 벌써 피크닉을 하고 있다.


와이너리 근처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차를 몰고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은 미국의 유명한 요리학교인 CIA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의 캘리포니아 분교였다.
뉴욕에만 있는 줄 알았던 이 학교 분교가 나파 밸리에 있다니. 횡재한 심정으로 학교에 딸린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요리사들은 이 학교 졸업생들이고 서빙하는 사람들도 모두 학교 학생들이라고 한다. 요리도 썩 좋았다.

뮈어 우즈(Muir Woods) 공원에 가서 1시간반 가량 산책. '아메리카 삼나무'라는 레드우드 숲이다.

이 공원은 벌목되지 않은 레드우드 숲을 보호하기 위해 1905년 이 숲을 산 윌리엄 켄트, 엘리자베스 대처 켄트 부부가 연방정부에 기증해 만들어진 보호림이라고 한다.
사람없는 사진만 덜렁 실어놓으니 이 나무가 얼마나 큰지 보여줄 수가 없어 좀 안타깝다. 수백년씩 된 나무의 둘레는 어른 서너사람이 둘러싸야 족히 감싸질 정도로 굵다.
숲 사이로 난 산책로를 걸으며 몇달 전에 읽었던 책 '나무의 죽음'이 떠올랐다.
산림학자인 저자는 나무는 한 번 정착한 곳에서 일생을 보내는 탓에 온갖 생명체의 공격으로 성할 날이 없고, 나무에 깃들어 사는 생명체들의 삶에 대한 열정이 강하면 강할수록 나무에 새겨지는 상처도 많아진다고 썼다.

그래서인지, 레드우드 나무들의 밑둥엔 작은 동물이 충분히 깃들어 살 수 있을만큼의 틈새와 균열이 무수했다. 수백년간 자신을 내어놓고, 갈라지고 균열이 가도 상처를 견뎌내며 여전히 곧게 서 있는 나무들을 올려다보니, 사소한 짐들의 무게조차 못이겨 점점 굽어만 가던 등이 다소 펴지는 듯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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