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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거세던 일요일, 샌프란시스코 남쪽의 몬트레이 Monterey 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성당 미사 참례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부모님께 일요일 미사를 거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날씨도 나쁜데 이런 날은 미사 빼먹어도 하느님이 뭐라 안할 거라고 계속 구시렁거려도, 부모님은 눈도 꿈쩍하지 않으셨다. -.-;
옆 사진은 파도가 몰아치던 성당 앞 바다.

일찌감치 도착한
성당에선 성가대가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다. 성가대원 대부분과 피아노 반주자, 바이올린 연주자가 모두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할아버지다.
휴스턴의 성당에서도 그랬지만, 미국 성당들의 미사는 성가가 참 좋다. 노래를 정성스럽게 하면 그 자체가 마음을 울리는 간절한 기도가 된다는 것이 실감날 정도다.


제대가 보통 성당 전면에 배치된 한국과 달리 이 성당은 제대가 가운데 쪽으로 내려와 사람들이 제대를 빙 둘러싸고 앉는 구조였다. 밖에선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사람들이 동그랗게 제대를 둘러싸고 무릎을 꿇은 작은 성당에서 진행된 성찬의 전례는 내가 참여해본 이런 종류의 예식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믿음이 별로 없지만 나는 가톨릭 미사 중 성찬의 전례 시간은 좋아한다. 어릴 때는 아무나 못먹는 밀떡 (가톨릭에선 영세를 받아야만 밀떡을 먹는다)을 먹는 게 우쭐하니 좋았고, 커서는 예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신성하고 조촐한 만찬에 초대받는 듯한 느낌이 좋다.
이날 신부님은 예수가 열두제자에게 하듯 평신도들을 제대 위로 불러 경건하기 그지없는 포즈로 빵과 포도주를 먹여주었고, 평신도들은 신중한 걸음걸이로 내려와 신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눠주었다. 미국 성당의 밀떡은 한국 것보다 두툼하고 컸다.


미사가 끝난 뒤 해변의 관광포인트인 캐너리 로 cannery row 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원래 통조림 공장건물들이었는데 지금은 식당과 가게가 즐비한 쇼핑거리다. 거리의 원래 이름도 달랐지만 스타인벡이 쓴 같은 제목의 소설이 출간된 뒤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fish hopper 가 점심을 먹은 식당. 음식 맛보다 바다 위로 돌출된 식당이어서 경치 값으로 한몫하는 식당이다. 당연히, 음식 값도 비쌌다. ㅠ.ㅜ

식당이 딸린 건물엔 스타인벡 왁스 뮤지엄도 있다.
난 존 스타인벡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보다 여행기인 ‘찰리와 함께 한 여행’ 과 초기 소설인 ‘토르티야 플랫 Tortilla Flat’이 훨씬 좋다.
‘토르티야 플랫’의 너무나 웃긴 대니의 친구들이 살던 집은 몬트레이의 언덕에 있다. 어디쯤을 무대로 해 스타인벡이 이 소설을 썼을지 찾아보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기회가 못되었다.
사기를 쳐도 어리버리하고 계속 배를 곯던 대니의 친구들이 먹을 걸 구하러 어슬렁거리던 해변이 지금은 관광버스를 타고 몰려오는 여행객들 차지가 되어 있다.
해변의 근사한 풍경들만 휙 지나치고 마는 게 못내 아쉬웠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근처 살리나스의 스타인벡 센터에도 가보고 싶다.


부모님이 별 관심을 보이시지 않아 몬트레이의 수족관은 제끼고, 17마일 드라이브와 골프장으로 유명한 페블 비치 pebble beach 를 거쳐 카멜로 향했다. 서부 종단 여행을 처음 해본 7년전엔 이 17마일 드라이브가 아주 인상 깊었는데, 다시 와보니 그 인상이 다소 과장된 것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여행을 할수록 점점 더 반듯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곳에 대한 매력이 떨어진다.  
파도가 세게 치던 날이라 the lone cypress 인가 하는 저 나무를 보는 전망대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 파도가 바위에 철썩 부딪힐 때마다 ‘와~’ 감탄을 내지르고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나도 덩달아 파도가 제대로 부딪히는 저 사진 한장 찍기 위해 한 댓번 셔터를 눌렀다는...

샌 시메온 san simeon의 고성을 보고 피스모 해변 pismo beach 의 호텔까지 가려면 갈길이 바쁜 탓에 몬트레이 아래쪽의 소도시 카멜 carmel은 그냥 차창 밖으로 구경만 하고 지나치려 했으나... 길거리의 가게가 너무 예뻤다.


차를 잠깐 세우고 동화속에서 튀어나온 것같은 예쁜 집들을 감탄하며 구경하다가 출발이 늦었다. 해변의 1번 국도를 따라 남하.
엉뚱하게도 캘리포니아 1번 국도, 하면 나는 이문세가 생각난다.
지금까지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들과 7년전, 이 도로를 따라 차를 몰고 내려오면서 무료함을 달랠겸 이문세 노래 20곡 이어부르기를 한 적이 있다. 
설마 그걸 다 하랴 싶었는데 셋이서 돌아가며 이문세 노래 20곡을 다 불렀다. 우리가 그걸 다 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세 사람이 모두 기억하는 이문세 노래가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2,30대를 보내 공유하는 게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우리가 상당히 비슷한 기억을 나눠가진 동세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1번 국도를 따라 내려가는 출발은 좋았다. 파도가 제법 거센 바다와 그 위로 흐릿하게 드리운 노을.
그러나 도중에 그만 날이 저물어 버렸다.
깜깜한 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헤치며 심한 꼬부랑길을 운전하는 건 그리 즐겁지 않았다. 머리끝이 쭈뼛해지는 경험을 몇번 하면서 차를 몰아 결국 샌 시메온에 가긴 했지만, 고성 구경은 커녕 대충 저녁만 때우고 피스모 비치의 호텔에 들어가니 밤 10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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