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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의 샌프란시스코는 필름 누아르의 무대 같다. 위의 사진은 피어39에서 유람선을 타고 바라본 샌프란시스코 시내 쪽 풍경.
아래는 트윈 픽스에서 내려다 본 시내 전경.

먹구름이 도시를 감싸고 있어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종일 흐리던 날 밤에 인터넷 카페를 찾아 길거리를 헤맬 땐 어찌나 음산하던지. 어느 골목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담배를 문 험프리 보가트 같은 사나이가 튀어나와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그런 사람이 나타나주기만 한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사립탐정처럼 멋진 사나이의 등장을 기대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길거리의 골목들을 열심히 들여다보았으나...눈에 띄는 사람들이라곤 죄다 나처럼 어리버리한 여행자이거나 바빠서 거의 뛰다시피 걷던 무표정한 사람들, 아니면 걸인 들이었다.

케이블카에 매달려 언덕을 오르내리던 화창한 샌프란시스코를 떠올렸던 터라 흐린 날씨가 당황스러웠지만, 이 도시는 여전히 아름답다. 도착하자마자 차를 몰고 지그재그로 굽은 롬바드 꽃길을 내려오는 ‘이벤트’를 진행한 뒤 러시안 힐과 퍼시힉 하이츠 등을 쏘다녔다. 운전을 하느라 사진을 하나도 찍지 못했지만, 파스텔 톤의 집들이 참 예쁘다.


비가 갠 뒤 여행객 (어른들 모시고 다니던 영락없는 ‘관광객’이었지만, 난 이 ‘관광’이라는 단어가 너무너무 싫다...) 본연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Fisherman's Wharf에 가서 어슬렁거리며 놀고 Pier 39에서 유람선을 탔다.

금문교 아래를 지나고.
소살리토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올 때 이 다리를 지났는데 생각보다 길다.
알카트라즈 섬도 지나고.
날씨가 좋을 땐 수백마리씩 나타나는 바다사자들이 이날은 얼마 없었다.
바다 사자 한 마리가 드러누워 자는 폼이 아주 웃겼다. 다리를 꼬고 튀어나온 배 위에 한 손을 올린 채 세상 모르고 낮잠 자는 아저씨 처럼 천연덕스럽다.

소살리토의 호텔에서 들고 온 안내 책자엔 이 부두에서 가장 맛있는 빵집인 Boudin Bakery를 지나치지 말라고 나와 있다.
아주 큰 빵집인데 빵을 담은 바구니가 천장의 레일을 타고 돌아다녔다. 점심을 이미 먹고 들른 게 한스러울 정도로 빵 냄새가 고소했다. 여기서 빵 속을 파서 만든 Bread bowl 에 담아 먹는 클램 차우더는 정말 맛있을 듯.

샌프란시스코에 Irish coffee를 처음 들여왔다는 Buena Vista Cafe에서 커피를 홀짝거렸다. 아이리시 커피가 위스키를 섞은 커피인 줄 몰랐다. 위스키 맛이 상당히 강한 편. 손님들 중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층들이 많다. 운전 때문에 한 모금만 홀짝 거리고 만 내 커피를 가져다 드신 아버지는 "낮술에 취하네" 하며 기분 좋게 웃으셨다.  

시내를 한참 돌아다니다가 지나간 Palace of Fine Arts.
1915년 파나마 태평양 박람회의 임시 건물이었는데 석고 건축물이 너무 아름다워 계속 보전되다가 1960년에 콘크리트로 재건축 되었다고 한다. 결혼 사진 찍는 명소라고. 공원 근처의 집들도 참 예뻤다. 이런 공원을 앞마당처럼 바라보는 명당자리 집에서 한 사람이 나와 조깅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사는 일이 어떻게 느껴질까. 그 역시 생로병사를 피해갈 순 없겠지만, 백조가 떠다니는 공원 주변을 조깅하는 그의 뒷모습이 너무 산뜻해 보여 잠깐 비현실처럼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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