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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31일자 내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바로가기) 슬럼가 주민들에게 손씻기를 가르치는 인도 여성들
인도네시아 여성 아데의 하루는 아침 6시에 시작된다. 임신한 여성이 있거나 어린 아이가 있는 집마다 들러 임산부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신생아들의 몸무게를 달고 예방접종을 하며 간단한 질병을 치료한다. 오토바이택시를 타고 오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그렇게 매주 20~30곳의 집을 방문한다. 자신이 만삭일 때에도 한 달에 417명의 아이 몸무게를 재고 23명의 아이 예방접종을 하고 33명의 임신한 여성을 돌보았다. 5천여 명이 사는 마을에서 여성들이 출산을 하거나 아이가 아프면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그다. 아데는 의사도, 간호사도 아니다. 15년째 이 일을 해왔지만 그저 마을의 평범한 주부일 뿐이다.
최근 내가 일하는 단체가 인도 델리에서 연 ‘에브리원 캠페인’ 포럼에서 나는 이처럼 오지 마을에서 영유아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분투하는 평범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에브리원 캠페인’은 2015년까지 5세 미만 영유아 사망률을 3분의2까지 줄이자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4초마다 한 명씩 5세 미만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프랑스 철학자 레지 드브레의 표현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아이들”인 것이다.
설사나 폐렴처럼 치료하기 쉬운 질병으로 아이들이 맥없이 죽어가는 배경에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심각한 글로벌 위기 중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저개발국, 특히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보건의료 인력들의 ‘엑소더스’(대탈출)다.
전 세계 질병의 24%가 아프리카에 창궐하지만 아프리카의 보건의료 인력은 전 세계 3%에 불과하다.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의사들의 3분의 1 이상이 유럽, 북미, 호주 등으로 떠난다. 심지어 에티오피아 출신 의사가 에티오피아보다 미국 시카고에 더 많다는 말도 나돌 정도다. 자기 나라에 남아 있더라도 도시로 탈출한다. 그러다보니 시골 마을엔 가장 가까운 병원이 200km 이상 떨어져 있거나 누가 병원을 지어준다 해도 일할 의사나 간호사가 없어 무용지물이다.
그렇다면 무슨 수로 태어나자마자 죽어가는 아이들에게서 십자가를 걷어낸단 말인가. 이 대목에서 아데와 같은 여성들이 중요해진다. 마을에서 오래 살아왔고 앞으로도 떠날 계획이 없는 여성들, 평범한 동네 이웃과 가족이 간단한 교육을 받은 뒤 마을의 보건요원으로 일하는 방식이 영유아 사망을 줄이는 유력한 대안인 것이다.
델리의 포럼에 참석한 아난드 뱅 박사의 ‘서치((SEARCH· 지역보건교육실행연구회) 프로젝트’도 그 같은 사례였다. 세계에서 영유아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인도에서 사망하는 아이의 60%는 집에서 숨진다. 이 점에 주목해 뱅 박사는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마을 여성들을 지역 보건요원으로 훈련시켜 집집마다 다니며 임산부 영양관리와 출산을 돕고 신생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다. 1984년 뱅 박사의 부모에 의해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신생아 사망을 50%까지 줄였다는 효과가 입증되어 인도의 공식 보건의료 정책에 포함됐다.
뱅 박사 (맨 왼쪽)와 마을 보건요원인 쿠숨바
뱅 박사는 마을 보건요원으로 일하는 여성들을 ‘최전선’의 보건요원들이라고 불렀다. 인도뿐만이 아니었다. 네팔에서도 마을마다 여성 보건 자원봉사자들을 양성한 뒤 5세 미만 영유아 사망자 수가 1991년 161명에서 2006년 61명으로 줄었다. 전쟁으로 초토화된 아프가니스탄은 여성이 밖에서 일하는 것조차 잘 허용하지 않는 나라이지만 미국이 폭격을 시작한 2001년 거의 없다시피 하던 마을 보건요원이 지금은 2만2천명으로 늘었다.
큰 이상은 거창한 방식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영유아 사망률’을 낮추자는 국제적 목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이웃을 들여다보고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살피는 아데와 같은 여성들의 발걸음에 의해 이뤄진다. 작은 실천에서 세상이 바뀐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 한다면, 그 최전선은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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