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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This I Believe

sanna 2012. 2. 5. 02:10

지하철에서 자주 듣던 포드캐스팅 중 'This I Believe'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미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삶의 믿음,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 등을 에세이로 써서 읽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걸 들은 지는 1년쯤 됐다.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순전히 영어 공부용으로 고른 거였다전생에 영어로 무슨 죄를 지었는지, 영어를 잘 못하면 괴로운 일이 자꾸 생기는 바람에 여러 방식의 영어 공부를 하게 됐는데 그 중 하나가 출퇴근 시간에 포드캐스팅 듣기였다.

그래봤자 자발성 부족한 내가 꾸준히 할 리는 없고, 점점 게을러지고, 제일 즐겨 듣던 프로그램이 중단되고, 듣는 기술이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고 해서 요즘은 제쳐 두었지만, 유일하게 다운로드 받아놓고 가끔 열어보는 프로그램이 "This I Believe". 이거 듣다가 눈물 흘린 적도 여러 번이고, 한때 열심히 들어 그런지 이젠 시그널 음악만 들어도 맘이 따땃~해진다.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나도 이런 거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든다.

 

이 프로그램은 195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라디오 방송을 2000년대에 NPR이 리바이벌했던 건데, 현재는 비영리조직 (바로가기이 계속 하고 있다. 책도 여러 권 나왔고 학교나 마을의 교육 프로그램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유명한 사람이든 평범한 주부, 회사원, 아이가 모두 '내가 믿는 것' 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하는 이 방송을 들으면서 무하마드 알리, 헬렌 켈러의 목소리도 들어보았고, 헬렌 켈러가 사회주의자였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하지만 명사의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삶을 지탱해주는 게 무엇인가를 들려주는 짧은 글이 의외로 깊은 울림을 남길 때가 많다.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에겐 이게 일종의 '치유적 글쓰기'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은 자신은 '비틀즈'를 믿는다고 말했던 10대 소녀였다. 가족 같던 개를 잃어버렸을 때 늘 차 안에서 함께 듣던 비틀즈의 노래를 숲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틀어놓고, 개가 노래를 듣고 돌아오리라 믿던 아빠에 대한 기억. 그리고 몇 달 뒤 그 아빠를 잃은 소녀는 지금도 비틀즈의 음악을 들으면 마치 아빠가 모든 게 괜찮다고 말하는 듯한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위의 동영상은 우주비행사가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 말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 다치바나 다카시의 '우주로부터의 귀환'을 읽은 뒤 우주에서 지구를 보고 싶다는 열망이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내 로망 중 하나라서 그런지, 이 에세이도 좋았다. 그는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낙관주의를 외면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짧은 글이지만 거의 모든 글엔 그걸 쓴 사람의 드라마가 녹아 있다. 이 우주비행사도 우주정거장에서 일하는 동안 어머니를 사고사로 잃었다.   
어제 오랜만에 지하철에서 들은 에세이 필자는 '점심시간'을 믿는다고 했다. 겨우 20대에 남들이 평생 거쳐볼 숫자의 직업을 전전한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점심시간만큼은 꼭 지킨단다. 점심시간에 그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편지를 썼고, 사무실 주변을 산책했고, 좋은 사람을 만났고, 웨이트리스로 일할 땐 잠깐 눈을 붙였고, 공부를 했다. "아침식사는 너무 낙관적이고, 저녁식사엔 너무 남을 의식하는 허세가 배어 있고, 점심식사야말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는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듯했다.
간혹 너무 교훈적이고 뻔한 내용들도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을 살아가게 한다고 믿는 것들은 다채롭고 예쁘다. 햇살, 웃음, 단순한 질문의 힘, 권투, 메모.... 나를 살아가게 하는, 사소하지만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 무엇은 뭘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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