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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로의 말에 서툴다. 상가에 가면 뭐라 말해야 할지 늘 난감하다. 위로를 받는데도 서툴다. 내가 상주가 되었을 때에도 사람들이 와서 위로의 말을 건넬 때마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줄곧 민망했다.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주거나 어깨를 두드리던 사람들이 그냥 대하기 맘 편했다. 위로를 주고받는 상황을 불편해하는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이 중에 늘 주변 사람에게 잘 대하고 잘 웃던 사람이 있었다. 그가 언젠가 상가에서 위로의 말을 하려고 상주의 손을 잡았는데, 사람들을 만나면 늘 하던 버릇대로, 자기도 모르게 웃고 있더라고 했다. 그런 자신을 그 사람은 오래 싫어했다.

 

위로의 말이 얼마만큼 위로가 되는지는 위로하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영화에서 잊히지 않는 장면 하나. 딸을 잃은 엄마가 있었는데 누가 뭐라 말을 해도 곧 터질 폭탄처럼 반응했다. 남편이 좀 조심하라고 한 마디 하니까 그녀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누가 위로를 해도 화가 나고, 위로를 하지 않아도 화가 나!"

 

얼마 전에 맘이 짠해서 위로를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이번에도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던 나는 딴 소리만 한참 하다가 집에 가기 직전에야 "괜찮지?"라고, 질문인지 다짐인지 모를 썰렁한 한 마디만 던지고 돌아왔다. 말이란 얼마나 무력하고 덧없는지...

돌아오는 길에 역시 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고 자책하다가, 내가 했거나 들었던 위로의 말 중에 별 도움이 안 됐던, 어떨 땐 되레 화를 돋구기만 했던 말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말들.

 

"나도 그런 적이 있어. 어땠냐면..."

이 표현이 같은 경험을 겪은 사람으로서 갖는 연대감의 표현이라면 뭉클할 것이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다어떻게 말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어떤 종류의 고통이든 지금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비통한 무대의 주연이다. 거기다 대고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면서 자기 경험을 길게 말하는 건, 주연을 밀어내고 자기가 주연 자리에 올라가는 짓이다이런 마인드가 조금 더 발전하면 뭐든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하는 가카와 크게 다르지 않다네가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내 고통이 줄어들진 않는다. 고통을 겪는 건 당사자에게는 절대적인  것이다

 

"그래도 네가 나보다 낫다..."

위의 경우처럼 고통의 주연을 밀어내고 자기가 그 무대에 오르는 부적절한 위로다게다가 고통을 두고 '비교격'으로 말하는 건 그게 뭐가 되었든 그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뚝 떨어뜨린다. 빅터 프랭클의 말마따나 고통은 가스와 같아서 양이 어느 정도이든 방을 가득 채운다. 아직 그 가스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에게 고통은 비교가 가능한 대상이 아니다.

 

"힘 내"

사실 선량한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이웃에게 위로의 말은 건네고 싶은데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를 때, 난감할 때, 가장 자주 건네는 위로의 말이 '힘 내'라는 말이다. 나도 자주 그렇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힘 낼 준비가 된 사람에겐 사실 하나마나 한 말이고, 힘 낼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겐, 아직도 넌 멀었다, 모자란다, 더 애를 썼어야지, 하는 말처럼 들린다. 너무 삐딱한가? 하지만 '힘 내'라는 말 대신 츠지 히토나리의 다음과 같은 말이 더 위로가 되지 않는가? 

"너무 힘을 내려고 애쓰는 바람에

네가 엉뚱한 길,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것만 같아.

굳이 힘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잖니?

인간이란 실은 그렇게 힘을 내서 살 이유는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거꾸로 힘이 나지.

몹쓸 사람들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그런 사람들이야.

힘을 내지 않아도 좋아.

자기 속도에 맞춰 그저 한발 한발 나아가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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