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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잘 잊혀지지도 않는 책 ‘미쳐야 미친다’를 읽으면서부터, 이 책의 저자인 정 민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가 궁금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한 분야에 미쳐(狂) 종래는 그 분야에서 경지에 미친(及)사람들의 이야기 자체도 매혹적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 재미없는 역사 (난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라 역사를 안좋아한다 ^^;)에서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퍼올리다니…. 정민 교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졌다.


마침 정민 교수가 이번에 ‘다산선생의 지식경영법’이라는 책을 펴냈고 그 핑계로 만날 기회를 얻었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은 18세기 통합적 인문학자이자 그 폭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분야에 걸친 조예가 깊었던 르네상스적 지식인인 다산 정약용이 ‘무엇을 했느냐’보다 ‘어떻게 했느냐’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정 교수는 최근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1년의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이 책은 그가 6개월 이상 시간과 노력을 집중 투자해 펴낸 책이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으로 건너가기 이전에, 정 민 교수 그 자신이 내겐 지식경영의 귀재처럼 보인다.


정 교수의 방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가 ‘씨앗창고’라고 부르는 연구실 구석의 자료 정리 차트였다. (오른쪽 사진 정교수 오른쪽 뒤편의 둥그런 파일들이 씨앗창고다)
원래 병원에서 쓰이는 환자 차트 정리용 도구인데 정 교수는 이 차트 나무를 자신이 관심있는 주제별 카드를 정리하는 용도로 썼다.

주제별 파일 600개가 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책을 읽으면서 전각, 새 등 관심있는 주제가 나올 때마다 전부 자료를 복사하거나 모아 파일로 정리해놓다 보면 어느새 책 한권 쓸 수 있는 만큼의 자료들이 모아진다고 한다. 당장 그가 뭔가를 쓰려고 마음 먹는 주제 뿐 아니라 ‘재미있는 옛 이야기’ ‘감동적인 시’와 같은 파일들도 눈에 띄었다.


정 교수가 이번에 맘먹고 덤벼든 대상인 다산 정약용은 18년의 강진 유배생활 동안 약 500권의 책을 썼으니 1년에 28권꼴이다. 그것도 참고 서적이 변변치 않은 귀양지에서다. 한 분야만 들이판 것이 아니라 행정가, 교육학자, 사학자였으며 토목공학자 기계공학자 지리학자 의학자 법학자 국어학자이기도 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분야에서 동시에, 그것도 탁월한 성취를 이룩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을 정 교수는 “정보를 필요에 따라 수집, 배열해 체계적이고 유용한 지식으로 탈바꿈시킬 줄 알았던 지식경영의 힘”에서 찾았다.


“18세기 지성사를 연구하다보니 그 시기를 실학이 아니라 정보화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대 ‘사고전서’ 간행 이후 정보가 쏟아져 들어온 18세기는 21세기 정보화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경전에 대한 사소한 해석 차이를 두고 티격태격하던 시대는 힘을 잃고 넘쳐나는 정보를 어떻게 재편집해 가치 있는 정보로 만들 것이냐가 중요해진 거죠.”


수집벽과 정리벽이 대단했던 18세기 지식인들을 좇다 정 교수가 마주친 사람은 “지식경영, 지식편집의 귀재”인 다산이었다. 정 교수가 연보를 통해 저술연대를 추정해본 결과 다산은 언제나 동시에 7,8 가지의 작업을 병행, 추진했으며 한 작업이 다음 작업의 원인이자 결과로 서로 엮여 있었다.


예컨대 ‘목민심서’는 역대 역사기록 속에서 추려낸 수만장의 카드를 바탕으로 정리한 목민관의 사례 모음집이다. 이 책을 쓰다가 형법 집행의 중요성을 절감해 이 부분만 확대해 ‘흠흠신서’를 엮었다. 또 ‘경세유표’는 이 부분작업의 결과들을 국가경영의 큰 틀 위에서 현장 실무경험을 살려 하나의 체계로 재통합한 것이다.


정 교수는 이 책에서 다산의 정보처리 방식을 촉류방통법(觸類旁通法·묶어 생각하고 미루어 확장하라), 어망득홍법(魚網得鴻法·동시에 몇작업을 병행하여 진행하라) 등 50개의 방법으로 정리했다.

“다산의 작업진행과 일처리방식은 아주 명쾌합니다. 먼저 필요에 기초해 목표를 세우고 관련 있는 자료를 취합해 카드 작업을 합니다. 이를 분류한 다음 통합된 체계 속에 재배열하는 것이죠.”


스스로 정교한 체계를 세워 지식을 조직화했을 뿐 아니라 다산은 자식과 제자들에게도 하나의 정보가 나오면 계속 찾아서 체계를 잡고 질서화하는 것이 공부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다산은 아들이 닭을 기른다고 하면 빛깔에 따라 구분해보기도 하고 횃대를 달리해보기도 하고 닭에 관한 글들을 모아 ‘계경(鷄經)’을 쓰라면서 그것이 ‘글 읽는 사람의 양계’라고 가르쳤습니다.”


정 교수는 다산이 ‘목민심서’를 집필할 때와 똑같은 방식을 따라 이 책을 썼다. “이전엔 전작으로 책을 써본 경험이 별로 없는데 이번엔 처음부터 설계도면을 만들어 작업하면서 다산 식의 작업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체험했다”고 한다.


“다산의 위대성은 그의 작업량이 아니라 작업의 방식에 있습니다. 그의 지식경영은 효율적인 공부방법과 경영지침서로도 여전히 유용합니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과거가 오래된 미래가 될 수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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