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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명물’로 유명했던 소설가 이외수 선생은 올해 초 집을 옮겨 강원도 화천군에 산다.

화천군이 약 10만평의 부지에 테마문학공원을 조성하면서 이외수를 ‘유치’했다. 그가 촌장이 된 마을 이름은 ‘감성마을’. 야외문학공원 수목공원 산책로 전시실 등을 조성한다고 한다.


9월 6일, 그곳에 다녀왔다. 이외수 선생과 다른 사람의 대담을 추진하러 간 길이었지만 블로그엔 아주 인상적이었던 이외수 선생과 나눈 잡담만 소개할까 한다.


감성마을 가까이에 다다르면 나무로 된 표지판이 보이는데 위를 쳐다보는 화살표가 아니라 달팽이 그림으로 ‘직진’을 표시해놓았다. ‘좌회전’표시는 왼쪽을 바라보는 새 그림을 그려놓고 ‘새가 바라보는 쪽으로’라고 적혀 있다. 달팽이와 새가 안내하는 표지를 따라 가는 길. 로맨틱하다.


이선생의 집 외관은 꼭 군사용 벙커 같았다. 마감을 덜한 듯한 시멘트 외벽.

이 선생은 나름대로 멋지게 짓는다고 지은 집인데 동네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옥수수 창고요?” “벽에 색칠은 언제 해요?”라고 묻는단다.

안으로 들어가면 요리하고 밥 먹는 생활이 이뤄지는 공간과 집필하고 그림을 그리고 학생을 가르치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나눠놓은 멋진 집이다.

주로 앉아서 생활하고 담배를 많이 피는 주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창문이 전부 방바닥과 면한 아래쪽에 달려있고 양쪽 방향으로 마주보게 트여 있다. 군데군데 이끼정원처럼 조각 정원들이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것도 좋았다.

               <이 선생 집  전경. 오른쪽에 이런 모양의 벙커가 하나 더 있다>

9월 24일에 이선생은 환갑을 맞는다. 그런데도 그는 싸이월드에서 초등학생들과 채팅을 하면서 논다고 한다. 초등학생과 이런 채팅을 한다나….

초딩: ‘즐쳐드셈’

이: ‘반사’

초딩: ‘반반사’

이: ‘뒷면’

…‘반사’ ‘반반사’는 네 말을 너에게 돌려주마, 대략 그런 뜻인 줄 알겠는데 ‘뒷면’은 뭐냐고 내가 물었더니 그가 그런다. “아, 거울 뒷면말야. 뒷면은 반사를 막아버리잖아” (꽈당~. 내가 늙었나, 아니면 이 할아버지가 넘 젊은 건가~^^)


이선생의 집은 채광이 잘 되도록 설계돼 아주 밝았다. 밤새 글을 쓰고 아침에 자는 생활습관이 오래 몸에 배어 있었는데 이곳에 이사 와서 생활리듬이 좀 바뀌었다고 했다. 종종 아침에 일어나는데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아침을 볼 때 당혹스러울 정도로 황당하다”고 했다. 춘천에서 살 땐 밤새 글을 쓰다가 별 진척이 없는데 창이 밝아오면 무참해진 적도 많았다고 한다.

화천으로 이사 오니 공기가 좋아서 소주 8병반을 먹고도 다음날 말짱하다고 자랑이시다. -.-;

뭐든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해서 눈앞에 놓여있는 소주 8병반을 다 마셔버렸다고 한다. 글이 잘 안 풀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사람들이 곧잘 묻는데 자신은 끝장을 봐야 하는 사람이라 “글이 잘 안풀리면 풀릴 때까지 쓴다”가 답이라고 한다.


앉아서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이선생이 갑자기 창밖의 햇살을 보니 생각이 났다면서 얼마 전에 작곡한 노래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이선생은 매킨토시를 쓰는데 컴퓨터 다루는 솜씨가 도사 급이다.

그가 들려준 노래는 피아노곡. 청아한 피아노 소리가 통통 튀어 하늘로 날아가는 것 같다. 그 곡을 들으며 내 마음속엔 ‘one fine day’ 같은 단어가 떠올랐다. 듣고 난 뒤 곡 제목이 뭐냐고 물었다. 제목은 “가을햇살”


가끔 그의 열성 독자들 중엔 그가 컴퓨터를 다루고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데 항의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첩첩산중에서 사과궤짝 엎어놓고 원고지에 피 토하며 글쓰기를 바라는데 웬 컴퓨터냐 이거지.ㅎㅎㅎ”

독자들 중엔 웃기는 사람도 많다. 돈 꿔달라는 독자도 그렇게 많고, 가훈 지어달라, 심지어 강아지 이름 지어달라고 하는 독자도 있다. 돈 꿔달라는 독자들이 요구하는 평균 금액은 1500만~3000만원. 대부분 대학생이고 언제 어떻게 갚겠다는 말도 없이. 세상에 희한한 사람 참 많다….


이선생은 베개를 끌어안고 방바닥에 엎드려 글을 쓰다가 허리가 안좋아지자 아들의 권유로 컴퓨터를 쓰기 시작했다. 채팅을 많이 하면 컴퓨터 실력이 금방 는다는 말에 천리안 채팅방에 들어갔다가 쉴새없이 뜨는 대화에 질려 나가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컴퓨터 코드를 뽑아버린 적도 있다. 컴퓨터 전원을 다시 켜면 그 채팅방이 뜰 것같아 아들이 올 때까지 아예 전원을 켤 엄두를 못냈다나… 의외로 소심하시다. -.-;

그러던 자신이 2003년엔 홈페이지에서 10대 악플러와 10대 1로 맞장을 뜬 적도 있다고 자랑한다. 10대 악플러가 몰려와 “오늘 밤 0시를 기해 공격(도배) 개시하겠다”고 하길래 그가 “그렇다면 좋다. 내가 주인으로서 먼저 도배할테니 날 능가해봐라”고 공격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두 시간동안 그가 먼저 자신의 홈페이지에 도배질을 시작했고 악플러들에게 어디 한번 너희들도 해보라고 하자 그들이 전부 ‘졌습니다’하고 무릎을 꿇었다는 무용담. (아…. 이건 직접 들어야 하는데 오디오 파일이 없는 게 안타깝다. 얼마나 말씀을 구수하고 재미있게 하시는지 ^^)

컴퓨터 다루는 솜씨가 나보다 100배는 뛰어난데도 그는 컴퓨터로 하는 글쓰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빈 화면에 커서가 깜빡이면 ‘빨리 써! 빨리 써!’하는 독촉으로 들린다고 한다. “컴퓨터 글쓰기는 전체적으로 가벼워서 사유에 좋은 공간이 아닌 것같다”고 한다.


글에 그림에 작곡까지. 어떻게 그렇게 다 할 수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의 대답이 걸작이다.

“아, 칼국수 끓이는 사람이 수제비는 못하겠어?”

이야기 도중에 이선생은 ‘경지’를 자주 언급했다. 무엇을 통해서든, 신발을 잘 닦든, 그림을 잘 그리든, 자신이 하는 일에서 경지에 오르는 것, 그 끝을 보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말씀하셨다.

딱 보면 아는 것, 그게 도(道)라면서 얼마 전에 봤던 한 인부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집 옆에 연못을 파는 공사를 할 때 한 인부가 거의 ‘도의 경지’로 일하더라고 했다. 큰 돌을 옮겨야 하는데 그 큰 돌 한 가운데에 정확하게 줄을 묶더라는 것. 옮기다 떨어질까봐 대개는 줄을 양쪽에 두 번 묶는데 그 인부는 한가운데에 한번만 정확하게 묶더라고 했다. 저러다 한번은 떨어지겠지, 하고 지켜봤는데 그렇게 묶은 돌을 수십번 옮기면서도 도중에 떨어진 적이 단 한번도 없더라고.

                 <이선생 집 마당의 연못. 하트 모양이다.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나무를 파내지 않고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속담을 만든 사람을 경배한다. 그것도 ‘경지’에 대한 말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수백년간의 생명력을 지닌 속담을 들을 때마다, 내가 수만 줄을 썼는데 이후 생명력을 가지는 말이 한 줄이라도 있을까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는 것이다.


이 선생 집에서 끝내 저녁까지 얻어먹고 하늘에 떠다닌다는 UFO에 대한 설명까지 듣고 돌아왔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너무 길어져 여기 다 못쓰겠다. 소싯적 미스 강원 이셨던 여걸 스타일의 사모님, 아주 훤칠하고 유머가 넘치는 청년인 이 선생의 둘째 아들도 인상적이었다.

이 선생은 아주 유쾌한 분이시다. 지적 허영심의 외투 따윈 처음부터 걸쳐본 적이 없는 듯한 분. 그가 자주 언급하는 ‘경지’, 자신의 길을 끝까지 가서 경지에 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야기 도중에 이선생의 새끼손가락이 눈에 띈다. 봉숭아물을 곱게 들였다. “섹시해보이려고 물들였지”하면서 그가 멋진 클로징 멘트를 날렸다.

“난 ‘노쇠(老衰)’에서 ‘노’는 인정하지만 ‘쇠’는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겠어”

  <집 앞에 사모님이 만들어 심어놓은 바람개비. 비를 쫄딱 맞아 다 이 모양이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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