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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인 일, 한 동료의 말마따나 “최소한”에 해당되는 일을 하는 게 진이 빠질 정도로 힘이 든다면…. 그 일이 과연 좋은 일일까.

며칠 마음이 무거웠다.

리.영.희. 그 이름 석 자를 내가 일하는 매체에 싣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겨우 실리기는 했지만 모양새가 초라해 차라리 하지 말걸 그랬다는 생각까지 든다... 서글프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집요한 놈”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리영희 선생의 저작집 출간과 절필 선언을 알리는 일에 집착했다. 한 사람은 “잘 아는 사이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그를 모른다.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같은 그의 저작 몇 권을 보긴 했지만, 너무 오래돼서 사실 내용이 기억나지도 않는다.

다만 그가 공적 무대에서 퇴장하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매체가 리영희 선생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 할지라도, 한 시대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지식인이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정리하는 무대는 지켜봐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정도의 존중과 예의도 없이 어떻게 ‘공론의 장’이 가능하단 말인가….


…각설하고, 일요일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리영희 선생을 만났다. 독자와의 대화 행사장에서였다. 특별한 예외가 없는 한, 아마 다시 없을 행사가 아닐까 싶었다.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긴 사회과학자가 서점에서 독자와의 만남 이벤트를 갖는 것도 드문 경우다. 게다가 지금의 20대는 그가 누구인지조차 잘 모를 것이다.

선생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강연 도중에 갑자기 “저기, 저쪽 파란 티셔츠를 입은 청년. 대학생이죠? 몇학번이예요?”하고 물었다.

그가 01학번이라고 대답하자, 선생의 대답은 이랬다.^^

“신세기 학번이네! 여기 다른 행사가 있는 줄 알고 잘못 온 거 아닌가? 신세기 학번은 나를 알 필요가 없어! ^^” (강연 끝나고 그 학생한테 내가 가서 물어봤는데 일부러 찾아온 학생이고 선생의 책을 서너권 읽었다고 한다.)


선생은 요즘 근황에 대해 “(손을) 쥐는 생활에서 펴는 생활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와 집필을 중단했을 뿐 아니라 지난해부터 소장 장서를 분야별로 간추려 그에 해당하는 연구소에 모두 기증하는 중이라고 한다.

리영희 선생은 명심보감에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로움이 없다’는 말을 인용해 자신의 결정을 설명했다.

“뭔가에 집착하면 욕을 보게 되어 있어요. 일제시대에 이광수가 얼마나 훌륭한 작가, 사상가였습니까. 그가 식민 시대에 차라리 글쓰기를 중단했더라면, 인간적으로 자기에게 충실하게 살기위해 욕심을 접겠다 생각했더라면 해방 후 훌륭한 업적을 남겼을 거예요. 그런데 그걸 참지 못하고 명예, 소설가의 존경, 사람들의 따름, 여성들의 사랑을 추구하다 욕되게 인생이 끝났습니다.”


 선생은 또 “충정이 강렬한 사람도 반드시 자기만이 옳은 게 아니다. 정의감과 충절에도 적절한 자기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념해야 할 대목...

11월 16일이면 선생이 뇌출혈로 쓰러진지 만 6년이 된다. 그는 “그만 멈추라고 하늘이 내려 보낸 옐로카드(뇌출혈) 덕분에 이제 관조하는 인생을 누리게 되어 흐뭇하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요즘처럼 제 얼굴빛이 맑았던 때가 없다”고 한다.


선생은 전집 출판도 처음엔 반대했다고 한다. 문학예술 분야는 후세에 가서도 빛 발휘하는 저작을 전집으로 남기게 되지만 사회과학은 상황이 지나가면 빛을 잃는 시한적인 것, 지나가야 하는 것이라서다.


그는 옛 소련의 반체제작가 솔제니친이 소련체제 붕괴이후 귀국할 때 “러시아의 젊은 세대들이 내 작품을 읽지 않고 내 이름을 모르는 것은 나로선 원래 바라던 대로 세상이 바뀐 것”이라고 말한 일화를 들려줬다.

“사실은 내가 솔제니친보다 2년 빨랐다구요. (웃음) 책에서 내가 말했던 것들이 상식이 되고, 더 이상 내 책이 팔리지 않아 인세가 제로가 되는 날이 나로서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시대는 지나가야 한다는 선생의 말은 진심인 것같았다. 질의응답시간에 한 사람이 “한국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듣고 싶다”고 질문을 했는데도 선생은 “그런 문제는 이제 내 인생에 없다. 후학들이 대답해야 할 질문”이라고만 대답했다.


굴곡진 시대를 직선으로 통과해온 원로 교수는 “이제 이대로 잊혀져도 기쁘다”고 말했지만, 독자들은 리 교수의 옛 저서를 들고 사인을 받으러 줄을 이었다.

유학을 준비 중인 독자 황재혁 (37)씨는 1977년에 출판된 ‘우상과 이성’ 초판본을 들고 와 사인을 받았다. 출판사인 한길사에도 한부밖에 없는 책이라고 한다.
그는 94년 우연히 ‘역정’을 접한 뒤 이 선생의 저서를 모두 읽고 모두 갖고 있는 열혈 독자다.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실증주의자인 이 선생의 그 누구보다 성실한 지식인의 자세, 진실된 정신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선생의 논문에 각주가 없는 데 완전히 내 것으로 소화한 다음에 쓰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자신도 논문을 쓸 때 그런 자세를 가지려 노력했다고...
상투적인 '내 인생의 스승'이니 하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그런 태도가 더 진실돼보였다.

강준만 교수는 언젠가 리영희 선생에 대해 ‘우리 시대의 스승’ 운운하는 진보 진영의 상투적 평가와 예찬에 질려있다면서 정치적 입장보다 리영희 선생의 지적 성실성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던 글을 쓴 적이 있다. 황재혁씨나 강 교수의 평가가 그를 '진보 진영의 스승'으로 섬기는 숱한 인사들의 태도보다 훨씬 진실하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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