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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

단 하루만 더

sanna 2006. 12. 8. 16:51

엄마.... 눈시울을 닦으며 이 책을 읽고나면 가만히 불러보고 싶어진다. 젊다고도 늙었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 오십이 된 주인공도 그런 모양이다. '지구상에 무수한 단어가 있지만, '엄마'와 같은 식으로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단어는 단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걸 보니....

미치 앨봄이 쓴 짧은 소설 '단 하루만 더' 를 읽다.
이 책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어정쩡하게 살다가 덜컥 중년의 문턱을 넘어버린 세상의 모든 자식들에게 보내는 위로이기도 하다. 과거에 어떤 실수를 저질렀든, 스스로를 용서하고 살아도 된다고 어머니는 자식의 등을 쓸어내린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에 이어 이 책에 이르기까지 미치 앨봄의 일관된 주제는 죽음을 통한 삶의 재발견인 것 같다. 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뭔가 잘못되어간다는 느낌이 들 때, 그는 늘 죽음을 상담자로 삼는다.
이 책은 대단히 잘 쓰여졌거나 문학적 성취가 높은 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쉽게 술술 읽히는 그의 책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까닭은 죽음이라는 필터를 통해 읽는 이가 자신의 일상, 소중한 사람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하기 때문이 아닐지.

주인공 찰스는 야구선수의 꿈도 이루지 못했고 아내와는 헤어졌으며 하나뿐인 딸은 주정뱅이 아버지가 말썽을 피울까봐 결혼식을 알려주지도 않아 사위 얼굴도 모르는 신세다. ‘철문이 코앞에서 닫혀버리는 느낌’에 절망해 자살을 결심하지만 죽는 데에도 실패해 비참의 늪에서 헤맬 때 그는 이미 세상을 뜬 어머니를 만난다.

찰스의 환상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아주 건조하게는 죽음 직전에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흘러간다는 ‘임사(臨死)체험’이라고 불러도 좋다. 찰스는 어머니를 따라 옛날 동네를 함께 걸으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 안에 새겨진 부모의 흔적을 발견한다.

미국에서도 이혼이 드물던 1960년대, 찰스의 어머니는 마을에 한 명 밖에 없는 이혼녀였다. 마을의 여자들에겐 경계의 대상, 남자들에겐 유혹의 대상, 아이들에겐 훔쳐보기의 대상이었고, 간호사로 일하던 병원에서 고위 관리자의 ‘부적절한 행동’에 항의했다가 해고되고 만다. 아직 어린 찰스는 그런 엄마가 부끄럽기만 하다.

하지만 “부모란 자식을 소용돌이 위로 안전하게 밀어 올리는 사람들”이다. 그 과정에서 부모가 어떤 고통을 겪는지 아이들은 알 수가 없다.

찰스는 죽은 어머니를 만난 날, 자신과 여동생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기 위해 어머니가 간호사에서 미용사로, 그리고 청소부까지 되었다는 사실과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부모의 이혼 사유를 알게 된다. 대화체로 진행되는 찰스의 이야기가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인지도 책 끄트머리에 작은 비밀처럼 숨어 있다.


책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은 머릿속에 저절로 이미지가 떠오를 만큼 생동감 있다. 저자 자신의 체험이 녹아있는 덕분이다. 저자는 이혼한 가정의 아이가 느끼는 혼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아들의 몸부림, 아들을 통해 꿈을 대리 실현하려는 아버지의 욕망, 아들의 삶을 무한히 긍정하는 어머니의 사랑, 성인이 되어서도 지워지지 않는 부모의 영향 등을 교차해 이 짧은 소설을 결이 풍성한 이야기로 짜냈다.


죽은 어머니와의 만남을 통해 찰스는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며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연다. 찰스가 깨달은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죽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 대한 유일한 답일는지도 모른다.

단 하루만 더  미치 앨봄 지음, 이창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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