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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

강산무진

sanna 2007. 2. 4. 23:30

남자, 쓸쓸하다.

훈의 소설집 강산무진 책장을 덮으며 중년 남자, 아니 중년의 삶이라 해도 좋을 목숨의 쓸쓸함이 안에서 서걱거린다.

힘들어도, 아파도, 아얏 소리 한번 내지르지 않은 그들이 묵묵히 감당하는 삶의 무게가 어깨에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등으로 아픈 기운이 번진다. 고단한 그들.. 허무한 세상을 묵묵히 감당하며 걸어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등을 쓸어주고 싶다.

남자가 있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50 후반의 기업체 임원. 어느날 느닷없는 간암 판정을 받는다. 너무 늦어버렸다는 사망 선고 앞에서 그가 있는 일이란 뭘까. 은행에 가서 적금을 해약하고 아내에게 못다 위자료를 전달하고 아파트를 팔고 주식을 처분하는 등의 일상 생활 정리이다. 표제작 강산무진에서는 오열이나 절망보다, 그가 그렇게 말없이 하루하루 뭔가를 정리해야 하고 해결해야 하는 비정한 일상이 아프게 느껴진다.


화장에서 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내의 참담한 몸과 싱싱하게 피어나는 여직원의 몸에 대한 은밀한 상상을 교차해 전개하는 대목을 읽을 약간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이내 죽어가는 아내의 참혹한 몸에 대한 상세한 기사체의 묘사, 회사 여직원의 몸에 대한 주인공의 동경과 환상을 묘사할 때의 꿈결 같은 문장이 대비를 이루며 비루한 현실- 판타지 사이의 묘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현실과 판타지 사이엔 아내의 상중에도 여름 화장품 광고 시안을 결정해야만 하는 주인공이 있다. 살아가는 일이란 그런 것일 게다. 아무리 참혹한 일을 앞에 두고도 사소한 결정들을 해야 하고, 꾸역꾸역 밥을 먹어야 하는.

읽을 건조한 느낌이었는데 책을 덮은 인상 깊은 단편은 항로표지. 대단한 기대도 없이 섬을 떠나는 등대지기, 그리고 인생유전 끝에 등대지기로 흘러 들어오는 다른 사람.
흘러가고 흘러오는 사람들은 지향점도 없어보이고 인생이 격렬하지도 않지만,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묵묵히 견딘다. 마치 어떤 일을 겪더라도, 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라고 말하는


나는
책을 명상단식 캠프에서 틈틈이 읽었다.

과거의 나를 벗고 새롭게 거듭나고 싶은 욕망에 달려간 곳에서 읽기엔 지독하게 쓸쓸한 책이었지만, 덕분에 어떤 균형감각 같은 얻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균형감각이라고 해봤자 대단한 아니고, 뭔가를 새로 시작한다고 해서 지나치고 들뜬 감상, 무작정한 기대 같은 것으로 스스로를 속이지 않을 있도록 인생의 다른 면을 잊지 않는 자각 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생활과 사고의 다른 습관을 몸이 기억하도록 새겨넣겠다고 애를 쓰는 순간에도, 살아간다는 일이 다만 끝없는 체험의 연속일 뿐인 바래, 하는 심정으로 마음이 때로 고요해진다...

강산무진  김훈 지음
김훈의 첫 소설집. 2003년 여름부터 2006년 봄 사이에 쓴 단편들을 묶었다. 첫 단편이자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화장', 2005년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한 '언니의 폐경'을 포함하여 모두 여덟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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