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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선 남편. 그러나 아내의 유방암이 재발했다면...남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미국 민주당의 대선주자인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 이야기입니다. 아내 엘리자베스 씨의 유방암이 재발했지만 대선 레이스를 중단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 분 이야기가 미국에서 화제이군요.
가정과 야망, 두 가치가 충돌했을 때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해야 옳으냐, 가 사회적 토론 주제가 된 거죠.

먼 나라 이야기지만 전 22일 밤 야근하면서 이 분 덕분에 아주 혼쭐이 났더랬습니다.

22일 저녁부터 에드워즈 전 의원의 아내 엘리자베스 씨의 유방암이 재발했고 이 때문에 에드워즈 전 의원이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전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외신을 타고 계속 들어왔습니다.


그는 2004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을 때 ‘미스터 호감(Mr. Likable)’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였지만 선거 유세기간 동안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었죠. 낙선 다음날. 그는 그간 비밀에 붙여온 아내 엘리자베스 씨의 유방암 발병 사실을 공개한 뒤 정치활동을 접고 아내를 간병해왔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도 아내의 간병을 위해 두 번째 대권의 꿈을 접게 된다면, 안타깝고 가슴 찡한 스토리가 아니겠습니까.


더군다나 그는 섬유공장 노동자의 아들로 중하층에서 자수성가한 사람인데다 1996년 외동아들을 교통사고로 잃는 비극을 겪기도 했습니다. 상실감을 이겨내기 위해 아내 엘리자베스 씨는 48, 50살 때 두 번이나 아이를 출산하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그렇게 낳은 아이들이 지금 8살, 6살인데 아내는 또 유방암이 뼈까지 전이된 상태로 재발했구요….

   

문제는 그가 사퇴 여부를 공개할 기자회견 시간이 22일 낮 12시, 한국 시간으로 23일 밤 1시라는 겁니다. 조간신문 최종판 마감시간은 자정입니다. 이 시간을 넘긴 뒤 기사를 집어넣으려면 신문을 인쇄중인 윤전기를 세워야 합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외신을 샅샅이 뒤져 그의 사퇴를 전제로 기사를 써두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사퇴한다’ 한 마디만 나오면 잽싸게 수정해서 바로 윤전기를 세우고 집어넣을 계획이었죠. 다소 무리였지만 밤사이에 발생한 따끈한 뉴스를 그 다음날까지 미뤄둘 순 없으니까요.


드디어 밤 1시. 초조하게 CNN과 1분당 10여개씩 기사가 밀려들어오는 외신기사망을 번갈아 노려보며 기자회견을 기다렸습니다. 10분 정도 늦게 시작한 기자회견장에 웃는 얼굴로 나타난 에드워즈 부부는 유방암 재발 사실과 치료 가능성을 한참 설명하더군요.
...입안이 바짝바짝 탔습니다. 그들 부부와 미국 기자들은 바쁠 일이 없겠지만, 머나먼 나라에서 한밤중에 편집자들까지 모두 대기하고 있는 상태에서 회견을 지켜보고 있는 저에겐 솔직히 그의 아내의 불운보다 사퇴 여부가 더 중요했는데, 이들 부부는 암 환자 모임에서 사례 발표라도 하듯 암 이야기를 길게 설명하는 겁니다…. 제가 너무 매정한가요... -.-;
한 10분쯤 지났을까. 한 기자가 ‘드디어’ 사퇴 여부를 물었고 에드워즈 전 의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퇴하는 일은 없을 것. 유세는 계속된다”고 대답했습니다.


아~~~, 그 한 마디에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됐습니다. 뭐 이렇게 '몽땅 꽝‘이 되는 일이 처음 있는 것도 아니지만…, 대기 중이던 편집자들에게 ’기사 안쓴다‘고 전화하면서 어찌나 허탈하던지요.
솔직히 약간 짜증도 나더라구요. 사퇴할 게 아니라면 간결하게 사실을 설명하는 보도자료를 만들어 돌리면 될 일을 갖고 왜 요란하게 기자회견을 하고 그 전에 캠프의 전 멤버들이 ’극비‘라며 일제히 함구해 의혹이 모락모락 피어나게 했냔 말이죠.


....뭐 그렇게 그날 제 야근이 고생만 하고 소득은 없었던 ' 최악의 날'로 끝나버렸다는 야그이구요. ^^;

이런 경우 과연 어떻게 해야 옳은 건지, 계속 생각이 나더군요.

외신이 전하는 미국의 분위기는 두 갈래입니다. 모든 걸 제쳐두고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의견, 반면 암에 걸렸다고 모든 걸 중단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죠.
한마디로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와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의견의 대립이라고나 할까요.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아요. 아내 입장에선 ‘계속 하라’는 말 밖에 다른 선택의 대안이 없어 보입니다. 이런 경우 ‘그만두고 나와 함께 있어달라'고 (설령 속 마음이 그러할지라도) 드러내어 말할 아내는 별로 없을 것같아요.

결국은 남편이 결단할 문제인데, 전 계속 대권 가도를 달리기로 한 남편의 입장에 별로 동의는 안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편을 ‘가정을 도외시한 정치꾼’이라고 비난하기도 어려울 듯 싶습니다.
오히려 암 환자인 아내 입장에선, 모든 것이 평상시와 똑같이 진행되어 가는 것이 더욱 용기를 북돋우는 것일 수도 있죠. 아내도 남편의 캠프에서 선거 전략을 함께 짜며 자신의 모든 것을 이미 ‘올인’한 상태인데, 남편이 불굴의 자세로 버텨주는 것이 그녀에게 더 큰 힘이 될 수도 있는 것이구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저녁을 같이 먹던 동료들에게 물었더니 한 남자 동료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당연히 (대선 후보를) 그만둬야지”하고 대답했습니다. 참고로 그는 소문난 ‘경처가’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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