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그냥...

웃음의 이유

sanna 2007. 3. 14. 13:41

어제 저녁에 스포츠 센터에 갔다가 두 여자의 대화를 옆에서 듣게 됐습니다.
“오랫만에 오셨네요?”
“응, 바빠서”
“그러게 말예요. 하는 일도 없는데 뭐가 그리 바쁜지..”
“그래도 이렇게 와서 샤워라도 하고 가야겠더라구”

…이 대화가 웃기십니까? 전혀 아니올시다죠. 그런데 두 사람은 이 무미건조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말을 마칠 때마다 어찌나 높은 웃음소리로 마무리하던지...^^ 마치 웃음이 문장의 마침표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죠.

이 분들은 너무 자주 웃는 게 눈에 띌 정도였지만, 잘 웃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죠.  전 워낙 낯을 심하게 가리는 터라 누굴 만나도 잘 웃는 사람들이 부럽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어제 외신을 보니, 대부분의 웃음이 유머와 상관이 없고 사회적 동물에게 필요한 본능적 생존의 도구라는 연구결과가 있네요. 뉴욕타임스는 13일자 ‘What’s so funny? Well, maybe nothing’이라는 기사에서 웃음이 유머라는 전제 위에서 웃음을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는 틀릴 수 밖에 없다고 하는군요.

로버트 R. 프로빈이라는 교수가 거리에 나가 직접 관찰을 했더니 80~90%의 웃음은 ‘맞아’ ‘다음에 보자’처럼 평범한 말 뒤에 터져나왔다는 거예요. 웃음 직전에 주고받는 대화의 대부분은 재능없는 작가가 쓴 지루한 TV시트콤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대부분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이 더 자주 웃는 경향이 있고, 여성들이 특히 그렇다는 군요.

음은 모든 인류가 갖고 있는 행동의 화석과도 같다고 합니다. 사람의 웃음은 침팬지같은 영장류가 서로 놀 때 간질이거나 좇으며 내는 리드미컬한 소리에서 진화된 것이라고 하네요. 뇌의 웃음을 만들어내는 회로는 어린 동물들이 싸우는 게 아니라 우호적 상호작용을 할 준비가 돼있음을 강조하는 신호 장치로 진화의 결과물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은 친구를 만드는 역할 뿐 아니라 사회적 위계에서 누가 어디에 속하는 지를 알려주는 장치이기도 하답니다.
플로리다 주립대 사회심리학자들이 지난해 여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 실험에서,  몇몇 참가자들에겐 보스가 부하 직원의 기여도에 따라 차등을 두어 보너스를 주듯 피실험자의 인터뷰 성실도에 따라 현금으로 상금이 지급될 거라고 말해놨답니다. 그 결과 이 여성들은 별로 웃기지도 않는 조크에 더 자주 웃었다는 군요....
사회 위계에서 낮은 서열에 있는 사람은 동맹이 필요하므로 즉각적 도움이 되지 않을지라도 더 자주 웃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죠. 이게 대단히 전략적 결정이라기보다 상황에 대한 자동적 반응이 그렇다는 겁니다. 아, 이 연구 결과, 너무 슬프지 않습니까......ㅠ.ㅠ

'그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디자인  (13) 2007.06.03
Cheers~  (20) 2007.04.24
미국대선주자에게 혼쭐난 사연  (11) 2007.03.26
어떤 칭찬이 마음에 드시나요?  (11) 2007.02.16
5000년의 포옹  (10) 2007.02.08
현미 주먹밥 만들기  (8) 2007.02.07
겨울의 생강차  (10) 2007.01.04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