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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추행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집행유예) 받았던 최연희 의원이 어제 열린 항소심에서 벌금 500만원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습니다. 주변의 반응을 보니, 이건 감형 정도도 아니고 거의 무죄 수준이라고 분개하는 사람들도 "피해자가 최의원의 사과를 받아들였으니 그리 아니겠느냐" 하고 관심을 접더군요.

그런데 피해자가 사과를 받아들이면 이렇게 거의 없었던 일로 해버리는 파격적 판결을 내려도 되는 건가요?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조목조목 설명한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블로그에 다른 사람의 글을 한번도 올린 적이 없지만,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올립니다.

아래 글을 사람은 법무법인 한결소속의 문건영 변호사지난해 사건 발생 이후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피해자 옆에 함께 있어줬던 사람입니다. 글은 오늘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최연희 의원의 강제추행 사건에 대해 항소심 판결이 선고되었다. 징역 6,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였던 1심을 파기하고, 벌금 500만원에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선고유예란 무엇인가. 경미한 죄를 저지른 중에 뉘우치는 태도가 현저한 사람에 대해서 형의 선고를 미루었다가, 2 동안 특별한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형벌을 내리지 않는 제도이다. , '앞으로 2년간 문제를 일으키면, 없던 걸로 주겠다'는 것이다.
 
담당 판사는 판결을 선고하면서 "친고죄에서 용서의 의사가 표시되었으니, 처벌조건이 약화 혹은 소멸되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언뜻 들으면 그렇듯 하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고 가슴 구석이 답답하다. 단지 감정적인 이유만일까?

범죄가 성립하는데도 불구하고 선고를 유예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도 이번 사건에서는 선고를 유예하면서 재판부가 근거로 것은 크게 가지이다.
 
첫째는 피고인이 당초부터 피해자에 대한 가해의사를 가졌다고 보기 어렵고, 피해자에 대한 가해의사가 유일하고도 고도의 것이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추행의 수단인 폭행이나 협박의 정도가 고도에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강제추행죄는 친고죄로서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거나 1 판결 선고 전까지 고소를 취소하면 처벌을 없는데, 피해자가 1 판결 선고 후에 피고인을 용서하는 의사를 표시하였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들은 기존의 판례와 법이론에 비추어 논리적으로 타당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친고죄와 관련된 근거를 먼저 보자. 죄를 지은 자가 처벌되는 것은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이 없다. 예를 들어 상해를 입은 자가 피해자를 처벌하지 말라고 간곡히 요청한다고 해도, 국가는 형벌권을 발동해서 객관적 질서를 유지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피해자가 처벌을 요구해야 국가가 처벌할 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친고죄라고 하는데, 어떤 죄를 친고죄로 정해 두는 이유는 제각각 다르다. 예컨대 일정한 범위의 친척 사이에서 일어나는 절도죄를 친고죄로 정한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자율적인 문제해결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반면, 강제추행과 같은 성폭력 범죄를 친고죄로 정한 것은 범인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피해자의 명예가 훼손될 것을 걱정한 때문이다. 친고죄이더라도 1 판결이 선고되고 나면 피해자가 고소를 취소할 없다. 이는 국가형벌권이 너무 오랫동안 피해자의 의사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강제추행죄도 친고죄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1 판결이 선고되었으므로 피해자가 고소를 취소할수가 없다. 실제로는 피해자는 용서의 감정을 표시했을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하는 '고소 취소'의 뜻을 표시한 것도 아니다. 더구나, 강제추행죄를 친고죄로 이유는 피해자의 뜻에따라 처벌 수위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피해자가 밝힌 용서의 의사를 형식적인 고소취소에 준하는 것으로 해석한다고 해도 이는 피해자에 대한 처벌 강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정당한 범위 내에서 양형에 고려될 있을 뿐이다. 그러니 1 선고 피해자의 용서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친고죄의 처벌조건이 약화되거나 소멸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넌센스다.

다른 판결 근거도 자세히 보자. 법전에서 강제추행죄를 찾아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한 자는 10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여기서 요구되는 폭행의 정도에 대해서 견해가 나뉜다. 1980년대 , 범인이 피해자를 팔로 힘껏 껴안고 강제로 차례 입을 맞추어 강제추행한 사건이 있었다. 원심은 강제추행죄가 성립하려면 폭행의 정도가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가 돼야 하는데, 정도의 폭행은 없었다고 하여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의 이유가 잘못되었다며, "강제추행죄의 폭행은 피해자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신체에 직접적인 물리력 행사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까지포함하는 광의의 폭력) 행사가 있는 이상 힘의 강약을 불문한다"고 하였다.
 
,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힘의 행사가 있으면 되는 것이지, 물리적인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해자를 억압해야 하는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원심에서처럼 강제추행의 성립 요건을 '의사를 억압할 정도'로 규정하는 것은 피해자의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외적으로 가해진 힘의 정도와 이에 대한 피해자의 물리적 저항이 가능했는지만을 고려하는 그야말로 가해자 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이러한 판결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판결로 돌아가보자. "추행의 수단인 폭행이나 협박의 정도가 고도에 이르지 않았다"는 것은 여전히 외적으로 가해진 힘의 정도만을 기준으로 하는 사고방식의 발현이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 행해졌는지를 따져야 강제추행죄에서, 피해자의 자리는 사라져버렸다.

법치주의라는 사람이 아니라 법이 지배한다는 의미이다. 통치하는 사람 맘대로가 아니라 미리 정해 놓은 법에 따라 객관적으로 통치하겠다는 것이다. 촘촘히 짜여 있는 거미줄 같은 법망 안에서, 우리는 법치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법을 적용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법을 통치자와 구분해서 만들어 놓아도, 판사가 맘대로 법을 주무르면 법치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막연한 환상조차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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