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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눈물을 흘리다니... 정수리에 수직으로 내리꽂는 폭포같은 철학자 니체는 눈물 따위 경멸할 것만 같은데 말이죠.

심리치료의 권위자로 손꼽히는 어빈 얄롬이 쓴 소설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는 실제 사건과 허구를 조합한 팩션입니다. 니체와 루 살로메 등 등장인물들이 워낙 유명한 사람들인데다 미국에선 꽤 오랜기간 베스트셀러 였던 모양입니다. 올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더군요. 위의 사진은 책 표지가 아니라 영화 포스터입니다.

imdb 별점이 4개 (10개 만점)인 것을 보면, 영화는 꽝인 모양입니다. -.-;

니체 역할을 맡은 배우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당최 모르겠는데) 아먼드 아상테 Armand Assante (오른쪽)는 분장을 하면 그럭저럭 니체를 닮을 것 같죠? 

하지만 루 살로메를 연기한 배우 캐서린 위닉 Katheryn Winnick (오른쪽)은 영 아니올시다 이군요. 이지적이고 강인한 인상의 루 살로메에 비해 턱이 뾰족한 이 여배우는 영락없는 발랄하고 새침한 현대 여성 분위기입니다. 루 살로메에 근접하기는커녕 그 옆에서 왜소하고 빈약해 보이는 이 여배우를 보니 V라인 턱선에 대한 콤플렉스가 살짝 사라지는군요. ^^;

소설은 1882년 니체가 사랑했던 (그 뿐만 아니라 릴케, 프로이트 등 당대의 천재들이 사랑했던) 여인 루 살로메가 비엔나의 의사 브로이어를 찾아와 니체의 절망을 치료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치료 의뢰를 니체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하면서요.

브로이어는 프로이트의 스승이며 정신분석학적 치료의 맹아를 고안해낸 의사입니다. ‘안나 O’로 알려진 여성 베르타 파펜하임을 치료하면서 대화요법을 통해 억압된 감정을 분출시켜 증상을 치료하는 방법을 처음 시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사례를 바탕으로 브로이어는 프로이트와 함께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저작인 ‘히스테리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게 되지요.


소설이 시작될 즈음 니체는 루 살로메에게 푹 빠져 청혼을 했다가 거절당한 뒤 다시 질병과 고독에 시달리던 상황에서 브로이어를 만납니다. 소설이 끝날 때 ‘건강해진’ 니체는 위대한 사상을 마음속에 품은 채 브로이어에게 작별을 고하지요.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만 시기를 추정해보면 그 몇 개월 뒤 니체의 웅변적인 걸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탄생하고, 몇 년 뒤엔 브로이어와 프로이트의 공저 ‘히스테리에 대한 연구’가 세상에 나옵니다.

심리학과 철학 양쪽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혁명적 발견과 사상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 (실제로는 만난 적이 없는) 양쪽의 거두를 만나게 함으로써 위대한 사상들이 어떻게 잉태되었는지를 상상하다니! 저자의 야심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닙니다.

책을 읽다보면 심리치료와 니체의 사상을 서로 어긋나지 않도록 정교하게 짠 저자의 솜씨가 보통이 아님을 실감하게 됩니다. 니체와 브로이어가 만나 옥신각신 다투고 기 싸움을 하는 동안, 기묘한 계약을 맺고 서로가 서로를 치료하는 동안, 심리치료의 기본 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핵심 사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는 공력이 대단합니다.


브로이어와 프로이트에서 시작된 정신분석학, 니체의 철학, 니체와 루 살로메, 브로이어와 안나O의 관계 등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지적인 소설입니다.

혹은 배경그림을 몰라도 별 상관없을 듯합니다. 그날이 그날 같은 끔찍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일탈의 충동, 중년의 위기에 시달려본 사람, ‘삶의 태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의외로 깊게 감정이입하며 주인공들의 마음풍경에 공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쓰다보니 길어져 접었습니다. -.-; 더 읽으실 분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어빈 얄롬 지음, 임옥희 옮김
음울한 천재 철학자 니체가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브로이어와 벌이는 화려한 지적 공방을 그린 팩션. 두 사람의 대화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은 니체의 핵심 사상을 노출시키는 데 할애된다. 1992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이듬해 '커먼웰스 베스트 픽션' 부문 금메달을 수상했고, 이후 13년간 장기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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