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하나의 다리를 건설하는 일이 만일 그곳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이들의 의식을 풍요롭게 하지 못할 양이면, 차라리 그 다리는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 시민들은 예전처럼 헤엄을 쳐서 건너든가 아니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된다. 다리는 사회 전체에 절대로 데우스엑스마키나 식으로 만들어져서는 안된다. 그런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의 피와 땀, 두뇌 속에서 태어나야 한다."
-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에서 재인용 -

데우스엑스마키나 (Deus ex machina) = 소설과 희곡 영화 등 모든 서사의 종결부에서 갑작스레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인위적이며 부자연스러우며 안이한 방식을 뜻한다. 고대 그리스 고전극에서 자주 활용되던 극작술에서 유래한 말이다. 주인공이 궁지에 빠졌을 때, 기계장치로 만든 신이 갑자기 등장하여 위기를 타개하고 주인공을 구원하며 결말을 맺는 연출방식. 중세의 종교극에 이용되면서 일반화되었다.

*   *   *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끄집어내어 뒤적거리다가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에서 눈길이 머무른 대목. 철렁해진다. 저자는 어떻게 하면 인민이 자기 운명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를 고민했던 파농의 화두를 설명하며 이 대목을 인용했지만, 난 엉뚱하게 삶에서 데우스엑스마키나를 바랐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궁지에 빠졌다고 생각될 때, 궁지에 빠진 것같은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서 안스럽게 지켜볼 때, 얼마나 자주 데우스엑스마키나를 꿈꾸었던가...... 물론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주는 데우스엑스마키나 같은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호랑이 한 마리와 함께 쪽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떠돌았던 파이도 데우스엑스마키나를 바랐더라면 아마 호랑이에게 물려죽든, 물에 빠져죽든 했을 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배에 구조되리라는 희망을 너무 많이 갖는 것도 그만둬야 했다. 외부의 도움에 의존할 수 없었다. 생존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내 경험상 조난자가 저지르는 최악의 실수는 기대가 너무 크고 행동은 너무 적은 것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데서 생존은 시작된다. 게으른 희망을 품는 것은 저만치에 있는 삶을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다."
-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에서 -

'나의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계발서들에 싫증이 날 때  (17) 2007.08.24
나무의 죽음  (10) 2007.08.18
남한산성  (16) 2007.08.12
생각의 탄생  (10) 2007.08.05
느긋하게 걸어라  (13) 2007.07.29
이랏샤이마세 도쿄  (11) 2007.06.19
걸프렌즈  (11) 2007.06.09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