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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

생각의 탄생

sanna 2007. 8. 5. 00:24

문: 세상에서 가장 싫은 물고기는?

답: 아이디어(魚)


…썰렁하다. ^^;
기획회의를 앞두고 바닥난 곳간처럼 텅 빈 머릿속이 원망스러울 때 동료들과 이런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킬킬거렸던 적이 있다.

콘텐트 생산자 뿐 아니라 학자, 예술가, 기업의 CEO, 자영업자, 평범한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이 물고기를 잡으려는 낚시질은 생업의 가장 긴급한 문제가 아닐까.

미끄덩 빠져나가기 일쑤고 대어라고 낚아놨더니 알고 보면 잡어인데다 옆집과 똑같이 생긴 건 낚아봤자 팔아먹을 수도 없는 이 물고기를 낚는 데에도 분명 요령이 있으렷다.


‘생각의 탄생’을 쓴 저자들은 ‘무엇을’ 생각하는가에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로 초점을 옮기라고 권고한다. 같은 주제이더라도 다루는 방식,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것을 발견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어떻게’의 능력은 이성이 아니라 ‘느낌’과 맞닿아 있다. 면역학 연구로 노벨상을 탄 미생물학자 샤를 니콜은 “새로운 사실의 발견, 전진과 도약, 무지의 정복은 이성이 아니라 상상과 직관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상상과 직관의 힘을 키우는 방법을 일러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과학의 천재들도 우리가 생각하듯 합리적 이성의 힘만으로 위대한 발견을 이뤄낸 것이 아니었다. 노벨상을 탄 유전학자 바버라 매클린턱은 옥수수를 연구할 때 종종 자신을 잊어버리고 자기 자신을 옥수수처럼 느꼈던 적이 많다고 한다.

‘느낌과 직관은 합리적 사고의 방해물이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 사고의 원천’이라는 것이 생리학자와 역사학자 부부인 저자들의 전제다.

저자들은 꽤 두꺼운 이 책에서 과학과 예술 각 분야에 걸쳐 세계적 천재들의 사례를 통해 생각하는 방법을 13개의 생각도구로 정리해 일러준다.

‘관찰’ ‘형상화’ ‘유추’ ‘감정이입’등 생각도구들을 각 챕터의 항목으로 삼아 개념을 요약하고 온갖 사례를 들어 설명한 뒤 어떻게 하면 그 생각도구들을 키울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주는 구조로 쓰여 있어 읽기에 어렵지 않다. 마치 ‘생각학 개론’ 같기도 하다.


가령 이 책에서 설명하는 ‘관찰’은 수동적 보기가 아니라 무한한 인내심을 전제로 한 적극적 관찰이다.

화가 마티스의 스승인 들라크루아는 “5층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바닥에 완전히 닿기 전에 그를 그려내지 못하면 걸작을 남길 수 없다”고 했다. 시각적 관찰 뿐 아니라 청각적 미각적 관찰도 모두 중요하다. 책에는 550여종의 새소리를 구별하는 작곡가, 돌 부스러기 맛만 보고도 로마시대 수로가 몇 년도에 건설된 것인지를 알아맞히는 학자들의 사례가 등장한다.

관찰력의 비결은 “시간과 참을성”이다. “위대한 통찰은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 즉 모든 사물에 깃들어 있는 매우 놀랍고도 의미심장한 아름다움을 감지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저자들은 관찰력 훈련의 방법으로 미술공부를 비롯해 음악 교육, 맛과 냄새만으로 커피와 차, 포도주 종류 알아맞히는 훈련 등을 권고한다.


책을 읽으며 저자들의 조언대로 미술공부도 하고 퍼즐 놀이도 자주 하는 공상을 하다가 책에 등장하는 천재들의 이야기에 기가 죽기도 하며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성인이 되어 머리가 굳은 사람들에게 이 생각도구들이 얼마나 유용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 대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같다. 이 책이 삼성 이건희 회장이 읽어 유명해지고 삼성경제연구소 CEO 추천도서에 꼽혔다지만, 사실 기업인보다 전인교육에 관심 있는 부모나 교육자에게 더 맞춤한 책이다.
남다른 성취로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한뼘씩 확장해온 천재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자신이 속한 분야에 시야를 한정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러 분야에 통달한 르네상스인, 잡학적 지식인이었다. 상당히 많은 위대한 과학자들은 그 자신이 예술가였고, 수학자는 시인이었으며, 화가는 경제학도였다.

저자들은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전인’을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예술교육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과학이나 인문학 수학을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철저하게 예술을 공부해야 한다. 예술이란 단순한 자기표출이 아니라 의학이나 수학만큼이나 엄격한 과목이며 그 나름의 지식 기법 도구 기술 철학을 갖고 있다. …과거를 돌아보면 예술이 융성하던 시절에 수학이나 과학 기술도 꽃을 활짝 피웠다.”


분화가 아닌 통합 쪽에 방점이 찍혀있는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들의 ‘통합의 능력’에 놀라게 된다.

화가 작곡가 물리학자 생물학자 조각가 건축가들의 사례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이들의 창조적 작업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생각하는 방식들을 추려내는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책에 등장하는 천재들의 사고방식보다 이렇게 별 관련 없어 보이는 분야들을 종횡무진 누비며 책을 쓴 저자들의 관찰력과 방대한 수집의 능력이 더 부러웠다.


생각의 탄생 -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 리처드 파인먼, 버지니아 울프, 제인 구달, 스트라빈스키, 마사 그레이엄 등 역사 속에서 뛰어난 창조성을 발휘한 사람들이 과학, 수학, 의학, 문학, 미술, 무용 등 분야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사용한 13가지 발상법을 생각의 단계별로 정리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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