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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

남한산성

sanna 2007. 8. 12. 11:55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자는 것’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읽고 나면 메아리처럼 머릿속에서 울려오는 구절이다. 이 말은 책 속에서 비슷한 말들로 여러 번 변주된다.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 ‘버티면 버티어지는 것이고 버티지 않으면 버티어지지 못하는 것’, ‘삶의 자리는 성 밖에 있는데 버티어야 할 것이 모두 소멸될 때까지 버티어야 하는 것인지’….

  비슷한 말들이 침략국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관료의 입에서도, 얼어 죽는 군병을 살려야 할 때 종친의 옷이나 챙기는 관료의 입에서도, 침략국의 앞잡이가 되어 항복을 강요하는 통역관의 입에서도 흘러나온다.

  ‘당면한 일’을 어떻게 당면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의 차이, 말들이 난무할 뿐 등장인물들의 성격적 차이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입과 속말을 통해 작가 김훈의 목소리만 집요하게 들려온다. 김훈의 일인다역 퍼포먼스를 보는 듯한 소설이다. 모든 소설이 결국은 작가 목소리의 반영이겠지만, ‘남한산성’은 그 정도가 좀 심하다.


  견딜 수 없는 걸 견딜 것인지 말 것인지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 대군이 에워싼 남한산성에 갇힌 신료들 사이에서 벌어진 다툼의 핵심이었다. ‘갈 수 없는 길은 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척화파와 ‘살기 위해서는 가지 못할 길이 없다’는 주화파의 대립. 이는 대다수의 우리가 겪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떠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높이 세운 목표와 이상을 좇을 것인가, 아니면 산다는 건 목전의 현실적 어려움을 계속 해결해나가는 과정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인가.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은 어느 편도 아니고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라고 썼다. 이 책은 그렇게 굴욕을 감수해가며 밥벌이의 괴로움을 견디어가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 같다.

  책 속에서 저자의 애정을 듬뿍 받는 캐릭터들은 척화파도, 주화파도 아니다. 그저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복무하는 수어사 이시백, 대장장이 서날쇠다.

  이시백은 “한번 싸움에 하나를 잡더라도, 하나를 잡는 싸움을 싸우지 않으면 성은 무너진다”고 부하들을 독려한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이시백의 대답은 저자가 서문에 쓴 ‘고통받는 자들의 편’이라는 말과 오버랩 된다.

  “나는 아무 쪽도 아니오. 다만 다가오는 적을 잡는 초병이오.”


  묘한 공감과 반감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드는 책이다.

  공감은 비굴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체념의 정서에서 우러나오고, 반감은 비굴함의 합리화에 대한 거부감에서 비롯된다. 서로 안 쓰려고 피하는 항복문서를 최명길이 자임해 쓰는 대목에서는 김훈이 80년대 초반 신문기자시절 아무도 안 쓰려던 용비어천가를 자신이 도맡아 썼다고 말했던 인터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것도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태도일까. 선뜻 동의할 수 없다.


남한산성  김훈 지음
소설가 김훈이 이후 3년 만에 발표한 신작 장편.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갇힌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다툼, 그리고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이 소설의 씨줄과 날줄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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