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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의 심리학8점


인생의 마지막까지 가져가지 말아야 할 유일한 감정이 있다면, 그건 ‘후회’라고 생각했다.
혼자 떠올린 기특한 생각이 아니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파울로 코엘료 등 지혜로운 분들이 먼저 생각해내고 그렇게 권했다.
그 조언을 착실히 따르려 애쓰면서, 뭘 할까 말까 고민할 때마다 판단 기준으로 ‘나중에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곤 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야말로 잘 산 인생의 전범이 아닐는지.

그런데 ‘IF의 심리학’을 쓴 미국 심리학자 닐 로즈는 후회가 그렇게 기를 쓰고 피해야 할 부정적 감정이 아니란다. 후회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뇌의 반사작용이므로 막으려 해봤자 소용없고 되레 유익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 책은 문학의 영역에선 곧잘 비장하게 다뤄지는 후회라는 감정을 ‘뇌의 기능’이라는 각도에서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행복, 사랑의 열정에 과학의 돋보기를 들이대면 우습고 초라해질 때가 종종 있는데, 후회의 감정을 그 돋보기로 들여다보니 좀 다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묘한 안도감이 느껴진다. 후회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이나 건강한 삶을 위해 필수적인 감정“이므로 후회한다고 자책할 필요도, 후회할까봐 주저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저자는 후회를 ‘사후가정 counter-factual 사고’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만약 ~했더라면’ ‘~할 수도 있었는데’ ‘거의 ~할 뻔 했는데’처럼 실제와 다른 결과를 상상하는 생각을 통칭하는 말이다. 고통스러운 후회는 그에 따른 감정적 부산물이다.
저자는 “대부분의 후회는 빠르게 생겼다가 없어지면서 아무도 모르게 우리를 발전시킨다”고 설명한다. 다음번에 더 나은 대처방안을 생각해내도록 돕고 삶에 대한 통제감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후회의 목록을 살펴보면 자신이 인생의 어떤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히는 어떤 종류의 후회는 “아직 남아있는 기회를 잡으라는 경고의 소리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후회가 계속 남아있는 이유는 뭔가를 할 기회가 계속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성인 수천 명을 대상을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장 많이 하는 후회 1위는 학업에 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언제든 학교에 돌아가 다시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후회를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합격했을텐데’처럼 더 나은 상황과 비교하는 상향적 사후가정과 ‘죽을 수도 있었는데 다리만 부러져 다행’처럼 더 나쁜 상황과 비교하는 하향적 사후가정이다.
둘 다 나름의 기능을 갖는다. 상향적 사후가정은 뭔가를 해서 상황을 바꾸려는 개선의 시작이며 하향적 사후가정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안도하게 만들고 마음을 위로한다.

상향적 사후가정은 스스로 의식하면서 하는 생각이지만 하향적 사후가정은 거의 자동으로 일어난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하향 비교를 할 대상을 만들어낸다. ‘세상을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고 어떻게든 좋은 점을 찾아서 마음을 편하게 위로하는’ 건 인간 마음의 뛰어난 능력 가운데 하나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를 쓴 하버드대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는 이같은 마음의 작동을 ‘심리적 면역체계’라고 개념화했다.

심리학 연구결과 사람들이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하는 경우가 이미 한 일을 후회하는 것보다 월등히 많은 까닭도 심리적 면역체계 때문이다. 심리적 면역체계엔 이미 저지른 일을 더 강하게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마음의 작동 기제에 대한 설명과 사례가 적절히 포함돼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후반부엔 사후가정사고의 작동 방식을 이용해 후회의 고통을 더는 방법, 물건을 잘 사는 기법, 협상을 잘 하는 기법, 시험장에서 답이 헷갈릴 때 기억해둘만한 요령 등 실용적인 팁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 모든 팁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그냥 저질러라’였다. 탁월하게 진화해온 우리의 뇌는 우리가 살면서 어떤 결정을 내리건 간에 결국은 그 결과에 만족하도록 스스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모든 경우에서 자동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뇌의 작용을 저자는 ‘존엄한 능력’이라고까지 불렀다.

물론 나쁜 후회, 심리적 면역체계를 압도해버리는 비극적 후회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경우에조차 과거 대신 미래에 초점을 맞추게 하는 일이면 그게 무엇이든 저질러야 한다고 권한다.

그게 무엇이든, 희망이 있든 없든, 뭐라도 해야 한다. 고통이나 절망보다 더 나쁜 최악의 상황은 인생이 내 곁을 스쳐지나가는 걸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는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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