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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운명은 뭐죠?”(포레스트)

“그건 네가 알아내야 해.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단다. 뭐가 나올지 모르거든.”(엄마)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포레스트와 죽음을 앞둔 엄마의 대화―

영화 ‘포레스트 검프’(DVD·파라마운트)에서 포레스트가 한번에 100개라도 먹어치울 수 있다고 자랑하던 초콜릿은 안에 땅콩이나 크림이 든 핸드메이드 초콜릿이다. 신중하게 골라봤자 먹어보기 전엔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다.

포레스트의 엄마는 사는 일도 마찬가지라는 입장인 것 같다. ‘뭐가 나올지 모르는’ 우연한 선택의 연속으로 운명이 만들어진다고 했으니까.

‘매트릭스 3: 레볼루션’(DVD·워너 브라더스)의 예언자 오라클도 포레스트 엄마와 생각이 비슷했다. 그는 올바른 선택 감별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선택이 정말 옳은 것인가를 아는 방법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뻔히 아는 상태에서 같은 선택을 다시 할 수 있는가를 보는 것이지.”

포레스트 엄마의 화법으로 옮기자면 내가 고른 초콜릿이 맛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다시 먹겠느냐는 거다. 먹어본 후에만 맛을 알 수 있다는 사정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다.

‘포레스트 검프’와 ‘매트릭스’는 만듦새에 닮은 구석이 별로 없지만, 보는 이에게 던지는 질문은 비슷하다. 두 편 모두에서 주인공들은 ‘예정된 운명이라는 것이 있느냐, 아니면 우연한 선택으로 운명이 만들어지는 것인가’를 놓고 전 세계와 가상현실을 오가며 씨름한다.

두 영화에서 악당이거나 삶에 대한 적의로 가득 찬 사람들은 모두 ‘예정된 운명’의 신봉자다. ‘매트릭스 3’의 악당 메로빈지언은 “원인이 없는 결과란 없다”고 믿으며 “선택이란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에게 주입시킨 환상에 불과하다”고 비웃는다.

‘포레스트 검프’의 베트남 전쟁에서 불구가 된 댄 중위는 자신을 구해준 포레스트에게 “모든 건 예정된 일의 일부이고 그냥 일어나는 일이란 없다. 내 운명은 전쟁터에서 죽는 것인데 네가 그걸 갈취했다”고 원망한다.

반면 살아보려는 사람들은 ‘우연한 선택’을 거듭하고 자신의 선택에 온몸을 던진다. 포레스트는 악동들을 피하려고 죽어라 뛰다가 미식축구선수가 됐고, 새우가 잡히건 말건 미련하게 그물을 계속 던지다 횡재를 했다.

‘매트릭스 3’에서 막강한 파워로 업그레이드된 스미스 요원이 죽자고 덤비는 네오에게 “목적 없는 존재를 왜 정당화하려고 노력하나, 왜 싸우는가”하고 빈정거리자 네오는 이렇게 대답하고 주먹을 날렸다.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일수록 자기 선택이 옳았다고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두 팀으로 나눠 여러 그림을 보여주고 가장 좋은 그림을 선택하게 했다. 한 팀은 그림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는 조건이었고, 다른 한 팀은 이번 선택이 최종 선택이라는 귀띔을 미리 받았다.

실험결과 선택은 한 번뿐이고 바꿀 수 없다는 언질을 받은 팀에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자기합리화인 걸까.

그보다는 현명한 선택이란 어쩌면 없는 게 아닐지. 포레스트와 네오는 선택 그 자체보다 선택을 현명한 것으로 만드는 선택 이후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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