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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일을 하려면 가끔 가장 원하는 일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어요. 꿈까지도.”

―영화 <스파이더 맨 2>에서 스파이더 맨이 악당 옥토퍼스 박사에게 ―

평범한 대학생 피터 파커가 거미인간으로 변해 세상을 구하는 영화 ‘스파이더 맨 2’ (DVD·컬럼비아 트라이스타)에서 이 말은 전혀 다른 뉘앙스로 두 번 쓰인다.

한 번은 영화 후반부, 스파이더 맨이 옥토퍼스 박사에게 초능력을 포기하라고 설득하는 장면에서다. 괴력의 문어 팔을 달고 악행을 일삼던 옥토퍼스 박사는 설득에 감복해 자신이 만든 핵융합 에너지 제조 시설을 껴안고 자폭하는 길을 선택한다.

또 한 번은 이보다 앞서 스파이더 맨 ‘폐업’을 결심한 피터에게 숙모가 영웅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장면에서다. 어찌 보면 2편은 1편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이제 중년의 위기를 맞은 스파이더 맨 같다. 거미줄이 잘 나오질 않아 추락하는 건 예사고 시력은 자꾸 나빠진다. 평범한 대학생과 영웅을 오가는 이중생활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에게 마음조차 제대로 전할 수 없다.

그뿐인가. 악조건을 무릅쓰고 악당과 싸웠는데 신문엔 ‘스파이더 맨과 닥터 옥토퍼스, 함께 은행을 털다’라고 나오질 않나…. 급기야 ‘유니폼’을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고 영웅 폐업을 결심해버렸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숙모는 이렇게 말하며 피터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우리 안의 영웅은 우리에게 힘을 주고 죽는 순간 부끄럽지 않게 해주지. 그래서 가끔은 가장 원하는 걸 포기해야 할 때도 있지만. 꿈까지도.”

같은 말이 한 번은 악당에게 마법 같은 초능력을 포기하라고 설득하면서, 또 한 번은 영웅은 계속 초능력을 지닌 영웅으로 남아줘야 한다고 말할 때 쓰였다. 영화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겠지만, 이게 현실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마법을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할까, 아니면 마법을 잃지 않는 묘수를 찾아야 할까.

미국 정신분석학자 알렌 B 치넨은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이라는 책에서 마법을 잃어버리고 요정이 떠나는 등의 모티프로 중년기를 다룬 옛날이야기들을 분석하면서 젊음의 마법을 제때에 떠나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옛날이야기에 곧잘 등장하는 마법은 완벽한 사회, 완전한 사랑 등 완벽함에 대한 청년의 이상을 상징한다. 그러나 현실의 엄혹함과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약점은 성스러운 이상을 가리기 마련이며, 청년은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완벽성과 순수의 마법을 잃어버리는 대신 노동과 고통에 대해 배운다. 이 같은 마법의 상실을 거부한 사람들은, 마법적인 로맨스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중세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처럼 대개 비극을 맞았다.

‘스파이더 맨 2’에서 옥토퍼스 박사도 완전함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않을 때 어떤 비극을 맞는지를 보여주는 경우다. 그가 처음부터 악당은 아니었다. ‘핵융합을 통한 에너지 생성’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꿈을 버려야 할 때 버리지 못했던 잘못된 집착이 그를 악당으로 만든 것이다. 완벽성이라는 우상을 스스로 파괴하지 못하고 ‘방법적 회의’조차 할 줄 모르는 성인은 옥토퍼스 박사처럼 흉하고 위험하다.

옥토퍼스 박사에게 이젠 초능력을 버려야 할 때라고, 꿈조차 포기해야 할 때도 있노라고 설득하면서 정작 자신은 그럴 수 없었던 스파이더 맨이 나는 너무 불쌍했다. 그조차 초능력을 포기했더라면 2년 뒤에 나올 ‘스파이더 맨 3’을 볼 수 없다는 또 다른 비극으로 괴로웠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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