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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 당첨자와 전신마비 환자를 관찰한 연구 결과, 닥친 상황은 극과 극인데 6개월이 지난 뒤엔 모두 본래 성격으로 돌아가더래. 명랑한 사람은 장애인이 돼도 명랑하게 살고, 꼬여 있던 인간은 부자가 되어도 뒤틀린 인간으로 살더래.”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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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난 평생 우울하게 살겠네?”(셀린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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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제시)
-영화 <비포 선셋>에서 제시와 셀린느의 대화-

9년 만에 만난 과거의 연인 제시와 셀린느.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비포 선셋’(DVD·워너브러더스)은 그들이 ‘어떻게’ 되기 직전에 끝난다. 셀린느는 말로는 제시에게 “이러다 비행기 놓치겠다”고 채근하면서도 유혹하듯 춤을 추고, 제시는 공항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영화는 거기서 끝이다. 하지만 80분 동안의 수다로 드러난 이들의 성격에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제시의 이론을 적용한다면, 이들의 ‘그 후’를 유추할 수 있다.

이루지 못한 소망과 의무감 사이에서 방황하는 제시는 ‘원하는 걸 포기하면 정말 행복해질까’를 생각하다가도 욕망이란 어쩔 수 없지만 원하는 걸 갖지 못한다고 분노하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변형이다.

셀린느는 반대다. 욕망을 문제 삼지 않으며 무언가를 원해야 즐거워진다. 자신을 거쳐 간 남자들에게 상처받아 약간의 냉소를 익혔지만, 질문과 호기심이 많은 그녀는 어쩔 수 없는 행동형이다.

영화가 끝난 뒤 이들이 침대로 뛰어들어 갔다고 한들 각자 살아가는 방식은 여전할 것 같다. 제시는 여전히 고민 많고 우유부단한 사색가로, 셀린느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일단 원하는 대상에 온몸을 던져보지만 또 그만큼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제시의 말대로 “사람의 어떤 성향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니까.

누군가는 그랬다. ‘성격이 운명’이라고. 타고난 특질과 어릴 때 형성된 성격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기도 하다. 심지어 행복감을 느끼는 것조차 유전자가 결정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의 연구진이 쌍둥이 4000쌍의 생애를 추적한 결과 유전적 소인이 행복감에 끼치는 영향은 50%인 반면 수입이나 결혼 종교 학벌이 끼치는 영향은 3%에 지나지 않았다. 원래 우울한 성향의 유전자를 지닌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감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다.

비슷한 실수를 반복할 때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실감하곤 한다. 하지만 어쩐지 불만스럽다. 운동과 담을 쌓고 살다가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몸을 움직이는 일을 습관으로 만들고 나면 더 이상 이전처럼은 살 수 없게 된다. 마음을 근육처럼 단련하는 일은 불가능하단 말인가.

예컨대 생각은 다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경쟁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무리 갈고 닦는다고 한들 호전적인 성격으로 변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경쟁이라는 관문을 거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그것을 무릅쓰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다. 혹은 그마저도 어려우면 나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겠노라고 결심할 수는 있다.

바뀌지 않는 성격이란 어쩌면 그 자체로는 좋고 나쁜 게 없는, 가치중립적인 것일는지도 모른다. 기술이나 지식처럼 성격 역시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방향이 달라지면, 가치관이나 희망사항, 자기 인식이 바뀌면 사람은 변한다. 바탕이야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변화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달라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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