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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바웃 어 보이>가 끝날 무렵 주인공 윌의 내레이션―
영화가 끝날 땐 철이 좀 든 걸까. ‘어바웃 어 보이’(DVD·유니버설)가 시작될 때 윌의 내레이션은 이랬다.
“(인간은 섬이 아니라는 말에 대해) 그건 말도 안 된다. 모든 사람은 섬이다. 바야흐로 섬의 시대다. 난 스스로를 꽤 근사한 섬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인간은 섬’이라고 주장하던 38세 바람둥이 독신남의 생각이 ‘섬들이 연결돼 있다’는 결론으로 바뀌게 되는 과정이 이 영화의 전부다. 초반에 윌은 “내겐 그 누구도 의미 없다. 그래서 난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잘난 체’를 하지만, 계속 그렇게 살긴 어렵다. ‘연결’된 상태로 사는 것보다 ‘섬’으로 사는 게 몇 백배 더 힘이 드니까.
윌은 ‘왕따 소년’ 마커스를 만난 뒤 달라지기 시작한다. 나는 서서히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두 사람을 보며 흔히 말하는 ‘공동체의 회복’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 성숙’ 같은 것들 대신, 한 사람 안에 ‘관계’의 흔적이 어떻게 쌓이는가에 더 눈길이 끌렸다.
영화가 끝날 무렵 윌과 마커스가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은 마치 두 사람이 서로의 안에 들어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깊은 관계 맺기’에 장애가 있던 윌에겐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싫은 일도 할 줄 아는 마커스가 들어앉아 있고, 늘 따돌림을 당하던 마커스의 안에는 튀지 않고 세련되게 어울릴 줄 아는 윌이 들어 있다.
‘관계’가 개인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훨씬 더 잘 보여주는 영화는 프랭크 캐프라 감독의 걸작 ‘멋진 인생’(DVD·리스비전)이다.
주인공 조지 베일리는 ‘닻줄, 비행기 엔진, 기적소리’를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세 단어로 꼽을 만큼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청년. 하지만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고 동생을 공부시키면서 그는 평생 고향을 벗어나지 못한다. 원하던 삶은 아니었지만 잘 살아보려고 애쓰던 그는 파산 일보 직전에 처하자 절망한 나머지 자살을 결심하게 되고, 그런 그를 돕기 위해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다.
조지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푸념하자 천사는 그의 소원을 받아들여 세상을 조지가 태어나지 않은 상황으로 만들어버린다. 상황은 끔찍했다. 조지의 어머니는 비천하고 고약한 할머니가 되어 있었고, (물에 빠졌을 때 조지가 구해줬던) 동생 해리는 9세 때 익사했으며, (자신도 모르게 독약으로 약을 짓다가 조지의 경고로 실수를 알아차렸던) 약사 가우어는 아이들 독살 혐의로 20년형을 살고 나온 뒤 거지가 됐다. 천사는 이 모든 상황을 조지에게 보여주며 말한다. “놀랍지 않나?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영향을 끼치다니….”
조지가 특별히 훌륭해서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조지처럼 나도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삶에 스며들었던 다른 이들의 흔적은 뚜렷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들 모두가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관계’에 함께 처해 있었을 뿐이다.
‘온전히 나뿐인 나’가 가능하기나 할까. 개별적 존재라고 생각하는 ‘나’는 사실은 수많은 ‘관계’의 교차점이자 흔적들의 중첩일 것이다. ‘관계’는 곧 나다. 다시 집에 돌아온 조지에게 천사가 남긴 마지막 메모에도 비슷한 말이 적혀 있었다.
“친구가 있는 한,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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