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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서 -
오랫동안 내팽겨쳐 둔 세 번째 책을 위해 사람들을 인터뷰하러 돌아다니고 원고를 쓰는 중이다. 얼마 전에 만났던 한 여성의 말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말을 다루는 일을 하다가 아주 구체적으로 사람을 돕는 일로 전업하게 된 그가 “땅에 발을 딛고 몸으로 부딪혀 세상을 배우는 구체적인 삶”에 대해 말했을 때, 나는 그가 얼마나 기쁨에 차 있는지를 말보다 눈빛을 보고서 알았다. 새로 시작한 일을 들려줄 적마다 그의 눈은 유난히 반짝거렸고 덤덤한 표정에도 생기가 돌았다. 번번이 기억의 시계를 되돌려 이미 지나온 과거를 들려달라고 청하는 것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하워드 진의 에세이집에서 읽었던 위의 구절이 떠올랐다. 미국의 실천적 지식인으로 손꼽히던 하워드 진조차 간호학교에 입학하는 젊은 여성을 부러워했다. 추상적 개념을 다루거나 글과 말로 살아가는 사람들 중 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일이 만들어내는 가치에 회의하며 ‘구체적 삶’을 동경한다.
집에 돌아온 뒤 나는 오래전 밑줄을 그어둔 이 구절 옆에 한 마디를 더 적어놓았다. ‘구체적 삶’이 변화시키는 대상은 다른 사람들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고. “타자지향적인 목표와 가치, 연결선이 명확하게 보이는 일을 하게 되면서 나 자신이 달라진 것 같다”는 그의 말이 떠올라서다. 스스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느낄 만큼 그가 고양된 것은 커다란 보상이 주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사회적 지위도 낮아졌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그의 일이 얼마나 목적을 달성할지도 알 수 없다. 충만함은 그런 데에서 오는 게 아닐 것이다. 다시 하워드 진의 말에서 한 대목.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받는 보상은 미래의 승리에 대한 전망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 있다는, 함께 위험을 무릅쓰며 작은 승리를 기뻐하고 가슴 아픈 패배를 참아내는 과정에서 얻는 고양된 느낌이다.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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