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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밑줄긋기

책의 연대기

sanna 2010. 4. 13. 01:24

“……역시 ‘책과 사람’의 연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초등학교 5학년 후반부터 도서위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한 것입니다. 도서위원이 되어보니 도서실의 열람 카드에 적혀 있는 이력을 볼 수 있게 되었지요. 열람 카드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여러 사람이 여러 시기에 읽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책을 읽은 날짜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해가 1956년이니까, 그 이전 40년대의 학생들, 더 올라가 전쟁 중의 학생들, 아니 전쟁 전의 학생들 기록까지 전부 남아있었지요. 1941년 6월12일 《에밀과 탐정들》,1932년 3월4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기록이 거기 남아 있었어요. 필적까지 그대로 말입니다.

 이것이 너무나 신기했어요. 한 권의 책에 끝없는 ‘연대기’가 딸려 있는 것이니까요.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독자가 한 권의 책에 딸려 있다, 그런 느낌을 초등학교 고학년 때 받았다는 점도 매우 큰 경험이었습니다.”

  - 마쓰오카 세이고의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에서-


   꼭 소장하고 싶은 조지프 캠벨의 책 하나를 중고샵에서 샀다. 3만원, 할인해도 2만4천원인 책값 좀 아껴보겠답시고……. 10만원짜리 책도 질러대던 옛날에 비하면 참……알뜰해졌다. -.-;;

  근데 헌 책을 받아보곤 잠깐 후회했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르다 내게 온 책인지, 표지 가장자리도 너덜거리고 회색의 표지는 빛이 바래 더 우중충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네 주인은 뭐하던 사람인거냐……. 조금 전 아무 페이지나 휙휙 넘기며 새 책을 살 걸 그랬다고 투덜대고 있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페이지의 한쪽 구석에 연필로 쓰인 작은 글씨를 발견했다. 전화번호와 ‘내일까지’라는 단어 하나.

   웃음이 피식 나온다. 신화를 다룬 책에 적혀있는 너무나 현실적인 전화번호 숫자와 ‘내일까지’라는 일정. 책을 보다 딴 생각이 났거나 급하게 적을 메모지가 없어 그랬겠지만, 낯선 이의 일상 한 순간이 이렇게 책 안에 담겨 나한테 오다니, 그냥 신기한 기분. 마쓰오카 세이고가 어린 시절 책 안의 ‘연대기’를 발견하며 느꼈던 ‘신기한 기분’ 만큼은 아니겠지만.

   마쓰오카의 책은 알라딘 블로거들의 호평이 없었더라면 아예 관심도 두지 않았을 만큼 제목이 깬다. ‘다독술’도, ‘답이다’도 거슬린다. 뻔하디뻔한 자기계발서의 느낌. 하지만 책을 보고 나니 알라딘 블로거들이 호평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통해 무언가 얻고야 말겠다는 목적이 뚜렷한 다독가가 아니라 그야말로 책을 사랑하는 열정적 독서가의 독서 체험과  방법론으로 가득한 책. 

  근데 왜 나는 마감이 코앞이고 할 일이 쌓여 미칠 지경일 때만 블로그에 뭘 쓰러 오는 걸까. 블로그가 점점 '딴 짓'용 취미가 되어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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