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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골라 펼쳐보는 오래된 버릇. 재미없는 책이 걸리면 일찍 자고, 다시 봐도 재밌는 책이 걸리면 또 읽는다. 
오늘 걸린 책은 "죽은 철학자들의 서"(사이먼 크리칠리, 이마고 2009). 철학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모아 쓴 책인데 이게 재미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건성건성 책장을 넘기다 아래 대목을 만남. 처음 읽을 때도 웃겼던지 끝 부분에 내가 ^^ 표시를 해놓았던데 그걸 까먹다니. 조발성 치매가 왔나. 좌우간 요즘은 정말 웃긴 책이 좋아~

메트로클레스 Metrocles 기원전 3세기
일설에 따르면 그는 연설을 연습하던 도중 방귀를 뀌고 말았다. 너무 부끄러워 절망한 그는 죽기로 작정하고 밥을 굶었다. 크라테스 (디오게네스의 제자로 견유학파의 인물인데, 견유학파는 콩을 경배했다. 콩 많이 먹으면..방귀 뀐다)는 심난해 미칠 지경이던 메트로클레스를 방문하여 루핀으로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루핀은 콩과에 속하는 식물로, 당연히 메트로클레스는 다시 한 번 방귀를 뀌는 추태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루핀은 견유학자들에게 아주 인기 좋은 음식이었다......방귀를 뀌었다고 해서 결코 추태라고 부끄러워할 것 없다는 크라테스의 말에 위안을 얻은 메트로클레스는 원래 테오프라스토스의 제자였으나 새로이 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었다.
이렇듯 철학은 방귀에서 시작되기도 하며, 혹자는 우리 몸의 한쪽 끝에서 나오는 뜨거운 공기는 다른 한쪽 끝에서 나오는 뜨거운 공기와 단짝 동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메트로클레스가 연로한 나이에 "스스로 질식해 죽었다"고 짤막하게 기록한다. 루핀 때문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콩에 대한 경배는 기원전 5~4세기 퓌타고라스주의자들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시칠리아 쉬라쿠사의 참주 디오뉘시오스는 퓌타고라스 공동체를 박해하면서 몇몇 철학자들을 잡아다 고문했다. 고문의 목적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퓌타고라스주의자들은 왜 콩을 밟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하는 것인가?"
임신중인 여성 철학자 튀미카는 무지막지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혀를 깨물어 참주의 얼굴에 뱉고 난 뒤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 퓌타고라스가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게 고전학자들의 거의 일치된 견해라고 하니 이 이야기 역시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어쨌든 무서운 콩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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