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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최선을 다해 기억하기

sanna 2010. 12. 21. 02:44

며칠 전 트위터에서 RT를 타고 낯선 이의 요청이 들어왔다.

“RT 부탁 드립니다. 제 동생은 7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서 20년을 뇌성마비로 지냈습니다. 가족 말고는 친구 한 명 못 사귀고 떠났습니다. 이제 가는 동생에게 잘 가라는 인사 부탁 드립니다. 제 동생 이름은 서수억입니다.”

 

처음 그 글을 봤을 땐 당황스러워 지나쳤는데, 계속 마음에 걸렸다. 친구 한 명 없던 동생의 가는 길이 얼마나 안쓰러웠으면 이렇게 낯선 이들에게 한 번만 동생 이름을 불러달라고 청할까. 타임라인을 한참 되돌아가 그 글을 찾아내 RT를 했다.
그러고 난 뒤 잊고 있었는데, 오늘 자기 직전 잠깐 스마트폰으로 트위터를 열었다가 그 분의 멘션을 보고기어이 다시 일어나고야 말았다. RT를 했던 사람들에게 서수억 씨의 엄마는 일일이 다음과 같은 인사말을 보냈다.

 

수억이 엄맙니다. 여러분께서 보낸 마음 하나하나 확인했습니다. 너무 감사한 마음 짧은 글로 표현할 수가 없네요. 친구가 많이 생겨서 하늘에서도 제 아들 웃고 있을 것 같네요. 평생 따뜻한 마음 기억하며 힘내겠습니다.” 

낯선 이의 멘션을 따라 떠오르는 나 자신의 기억….나는 서수억 씨의 가족만큼 용감하고 간절하지못한 탓인지 이제는 내 기억을 소리 내어 말하진 못하겠다. 노출증 환자처럼 책에 다 써놓고도, 사실은 그렇지도 않으면서 그게 무슨 마침표라도 되는 양, 수시로 찾아오는 그리움과 섭섭한 마음에 대해, 비슷한 웃음소리 하나에도 순식간에 환기되는 기억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못한다. 내가 이름을 새겨 선물했던 낡은 명함지갑을 가끔 쓰다듬고, 날이 추워지면 이제 겨울이 되었다고 속말로 인사를 보내고, 어디로 갈지 헷갈릴 때마다 ‘나, 어쩌면 좋아?’하고 가만 물어 보면서도

상실을 겪은 이들에게 사람들은 놓아주라,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이라고들 말한다. 아니. 그들이 틀렸다. 윤성희가 소설 구경꾼들에서 들려주었듯, “최선을 다해 기억하는 것만이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는 사랑했던 사람들을 계속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일 때도 있다.
서수억 씨 엄마가 이 글을 읽을 리 없겠지만, 그저 구경꾼들의 한 대목이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는 다급한 마음에 책을 한참 뒤져 아래에 적어놓는다.

 

전화벨이 울리자 할머니는 수화기에 손을 올려놓은 채 일곱을 세었다. 이게 둘째의 전화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 “엄마, 저 늦어요.” “술 조금만 마시고,” “,” 한번만 더 엄마 저 늦어요 하는 말을 들어볼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천천히 오라고 대답할 텐데. 할머니는 수화기를 들었다. 전화기 저편에서 사돈이세요? 하고 외할머니가 물었다. “.” 할머니가 대답했다. “이 세상에 우리를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대뜸 외할머니가 물었다. 외할머니는 다시는 찾아가지 않은 고향집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고향집 마룻바닥과, 해바라기가 열 그루나 있었던 마당과, 소용돌이를 그리며 물이 빠지던 수챗구멍에 대해. (…중략…) 할머니는 큰삼촌이 중학생이었을 때 종아리를 때린 적이 있는데 자꾸 그 기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단지 수학시험을 못봤을 뿐이었어요." 할머니는 목이 메어왔다. 외할머니는 할머니가 실컷 울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삼십 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났다. 코 푸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사돈 아직 거기 있어요? 하고 할머니가 물었다. “그래요, 여기 있어요,”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아침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했다. 큰삼촌이 얼마나 늦게 걸음을 걷기 시작했는지, 어머니가 얼마나 늦게까지 젖을 먹었는지에 대해. “잊지 마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기억하는 거예요.” 전화를 끊기 전에 외할머니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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