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눈썹이 없는 모나리자와 눈썹이 있는 모나리자. 물론 전자가 익숙하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울까.

<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몸>의 저자인 중국 작가 샤오춘레이는 눈썹과 눈망울이 가득한 여자가 좋다면서 후자의 편을 든다.

글쎄...난 전자가 더 좋다. 눈썹이 없는 모나리자가 더 또렷하고 예뻐 보일진 몰라도 훨씬 덜 세속적이다. 뭔가 초월적이고 비밀을 간직한 느낌...위에 보는 그림처럼 눈썹을 그려놓으니 너무나 세속적인 느낌이 든다. 눈썹 하나가 이렇게 인상을 달리할 수 있다니.

이 책, 참 재밌다.  
저자는 '인간은 누구인가'를 묻는 대신, 머리 눈썹 눈빛 코 체취 귀 혀 피부 목 어깨 유방 허리 배 무릎 발 등 신체 각 부위의 미시사를 통해 인간이 누구인지를 드러내 보여준다.

그간 신체의 문화사를 다룬 책들이 주로 서양 위주였는데 이 책이 아우르는 범위가 무척 넓다는 것도 잡학가적 호기심을 만족시킨다.
저자는 중국 고사에서 프랑스 문학, 당나라 시에서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몸의 역사를 채집한다.
얼굴 유방 처럼 주목받는 신체 부위 뿐 아니라 눈빛 무릎 혀 등 처럼 주목받지 못하던 신체 부위나 그 특징까지 아우를만큼 잡학적 지식의 폭이 넓다.

머리카락을 보자. 동서양을 망라해 과거의 여성들에게 높게 올린 머리는 매력의 상징이었다. 당나라 여성들은 머리를 30cm 이상 올렸고 숱이 모자라면 나무나 철사를 재료로 가발을 만들어 검게 칠한 뒤 머리에 붙였다. 18세기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영국 여성의 가발 중엔 높이가 120cm나 되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머리카락은 자유의 상징, 문화의 징표다. 중원에 들어온 만주인이 삭발령을 내리자 중국인들은 “황제와 나라를 위해 싸울 때보다 더 용감하게 머리카락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머리카락 때문에 때로 사람은 목까지 내놓는다. 인류만이 이처럼 “고귀하고 황당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무기인 눈빛이 사람을 죽일 수 있을만한 힘을 갖고 있다고 쓴다.

고대 중국의 미남 위개는 어디를 가든지 그를 보려고 몰려든 사람이 장사진을 이뤘다. 원래 몸이 허약했던 그가 세상을 뜨자 사람들 사이에선 “사람들의 눈길이 위개를 죽였다”는 말이 나돌았다.

눈언저리가 찢어지도록 질긴 눈싸움 끝에 호랑이를 이긴 진나라 사람의 이야기, 세르비아 고사에 나오는 눈빛 센 거인의 이야기 등 잡학을 풀어놓던 저자는 중국 현대사의 아픈 상처까지 눈빛으로 설명한다.

문화대혁명 당시의 투쟁 대회와 자아비판 대회에서 단상에 올라 비판을 받던 사람들은 사나운 눈초리와 비난의 손가락질을 견뎌야 했다. 저명한 문인 라오서(老舍)는 비판 투쟁대회에서 돌아온 뒤 호수에 몸을 던졌다. 사람들이 성난 얼굴로 노려보는 사나운 눈초리 앞에서 생명의 힘이 소진되어 죽음을 향한 용기 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이 “그 끝을 알 수 없는 존재인 인간에게 바치는 로망스”라면서 “인문학적 연구 논문이나 보고서가 아니라 ‘문학’으로 썼다”고 밝혔다.

신체 각 부위에 대한 묘사를 읽다보면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저자는 배를 “육체의 가장 깊은 어둠, 즉 굶주림과 빈곤, 실패가 자리하고 있는 공간”으로 파악하고, 등을 “어디에도 방위를 위한 전략적 요지가 보이지 않는, 넓은 평원과 같은 곳”이라고 불렀다.
“아득한 초원”인 등에 바치는 저자의 로망스는 다음과 같이 비장미 넘치는 낭만적 상상으로까지 이어진다.


“나더러 영웅의 죽음을 그려보라고 한다면 등 뒤에 창이 꽂혀 죽는 장면을 택할 것이다.

인간이 이 세상을 사는 것은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전신에 갑옷을 두를 필요는 없다. 자부심과 우호를 나타내는 부위 정도는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 가장 영광스러운 죽음은 배후의 기습으로 인해 죽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적이 당신을 대적할 용기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원제는 ‘우리는 피부 안에 살고 있다(我們住在皮膚裏)’

 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몸  샤오 춘레이 지음, 유소영 옮김
머리, 눈빛, 피부, 허리, 다리, 발 등등 우리 몸의 곳곳에 새겨져 있는 역사와 문화적 의미들을 추적했다. 원시 부족의 풍습, 중국의 고대 문헌, 최근 할리우드의 유행에 이르기까지 몸에 대한 다양한 작품과 일화들을 엮어, 우리 몸에 관한 욕망이 어떻게 해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나의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잃은 청년, 토니오 크뢰거  (0) 2006.08.27
에릭 호퍼,길 위의 철학자  (0) 2006.07.31
나아진다는 것  (2) 2006.07.31
빈곤의 종말  (2) 2006.07.10
동물과의 대화  (0) 2006.06.24
왜 사랑인줄 몰랐을까  (0) 2006.06.24
우연의 법칙  (0) 2006.06.24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