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에릭 호퍼 자서전 (Truth imagined)을 읽다.

평생 떠돌이 노동자로 살았던 미국의 사회철학자.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시력도 잃었다.
8년간 실명 상태로 지내다가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한 뒤, 다시 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독서에 몰두했다고 한다. (시력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면 나같음 책 안읽는다!)
               

                         
            
18살 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떠돌이 노동자로 살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부두노동자로 일하던 1951년, 그의 나이 49세 되던 해에 발표한 대표작 ‘맹신자들’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왼쪽의 표지가 더 나은데 왜 오른쪽처럼
바꿨는지 아리송.....)

부두노동자로, 오렌지 행상으로 또는 일용직 노동자로, 평생을 길 위에서 떠돌면서 살았던 사람. 길 위에서 살았던 사연이 어찌 단순하기야 하겠냐만, 그는 시종일관 담담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무심한 그의 글은 어떤 대목에선 자기 중심이 지나치게 단단한 사람의 단언처럼, 묘한 저항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책을 보면서 그의 철학보다 더 관심이 쏠렸던 대목은 그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에게도 사랑이 있었다. 그를 사랑한 여성 헬렌은 호퍼를 심성과 재능을 높게 사고 그를 비범한 사람으로 평가했다. 그녀의 사랑에 행복했으면서도 호퍼는 그것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끝내 그는 떠난다.

"별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나를 원더맨으로 만드는 것이 의무인양 작심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건 순전히 미친 짓이었다. 나는 헬렌을 깊이 사랑했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를 정당화하는데 얼마 남지 않은 내 인생을 소비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함께 살면 나는 한순간의 평화도 갖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즉각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 나는 길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가 여기까지만 썼더라면, 호퍼에 대한 관심이 증발되어버리고 책을 덮었을 것같다. 길 위의 인생이 인연으로 묽어지고 경계가 흐려지는 모든 관계를 배제한 채, 호두처럼 단단한 껍데기로 자신을 감싸야만 가능한 것인가...매력 없다.
그러나 호퍼는 이렇게 쓴다.
" 그녀와의 이별로부터 회복되는 데에는 몇 년이 걸렸다. 실제로 완전히 회복된 적은 없었다"

다음은 그가 자살에 실패한 뒤 길을 걷다가 트럭 운전사와 만난 뒤 적은 글.


“오후에 차를 얻어탈 수 있었다. 독일어 억양의 운전사는 애너하임으로 간다고 했다. 그가 내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목적지가 없이 무작정 걸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 안된다고 했다.

“사람은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희망 없이사는 것은 좋지 않아요”


그는 괴테를 인용했다.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태어나  지 않은 것만 못하다.’

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러나 운전사가 인용한 것이 옳다면 괴테가 그리 대단한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너하임에 도착하자 나는 조그만 도서관을 찾아갔다....그때 나는 게오르 브란데스가 괴테에 관해 쓴 두꺼운 책을 발견했다. 그 구절을 찾아보니 운전사가 잘못 인용한 것이었다. 괴테는 ‘희망’을 잃으면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용기를 잃으면’이라고 했다......
몇 주 동안 레스토랑에 머물면서 나는 손님 몇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어떤 여건 속에서도 명랑하다고 해서 나를 ‘해피’라고 불렀다. 러시아워에는 웨이트리스를 돕기도 했는데 그때 나는 내가 다른 사람 일 거들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좋은 하인 또는 훌륭한 시종의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날 나를 태워준 운전사가 레스토랑에 들어왔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나서 나는 그에게 내가 도서관에서 확인한 내용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인용을 잘못한 죄를 장난삼아 문책했다. 그는 한 마디로 일축했다. 희망과 용기는 그게 그거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차이를 설명하는 데 최선을 다 했다....

자기기만이 없다면 희망은 존재할 수 없지만, 용기는 이성적이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를 본다. 희망은 소멸할 수 있지만 용기는 호흡이 길다. 희망이 분출할 때는 어려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만 그것을 마무리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전쟁을 이기고, 대륙을 제압하고, 나라를 세우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희망없는 상황에서 용기가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줄 때 인간은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 떠돌이 철학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 27  에릭 호퍼 지음, 방대수 옮김
책은 에릭 호퍼가 떠돌이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부두노동자로 정착한 40세까지의 인생을 만년에 기록한 자서전이다. 8년 간의 실명 상태와 부모님의 죽음, 방랑, 자살미수 등 파란만장한 그의 생애가 27개의 에피소드에 담겨 있다.

'나의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벌레들이 살아가는 방법  (6) 2006.09.29
만족  (0) 2006.09.01
길잃은 청년, 토니오 크뢰거  (0) 2006.08.27
나아진다는 것  (2) 2006.07.31
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몸  (0) 2006.07.14
빈곤의 종말  (2) 2006.07.10
동물과의 대화  (0) 2006.06.24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