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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멋진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준 책을 꼽는다면, 난 주저없이 <전략의 귀재들, 곤충>을 들겠다.
후루룩 국수먹듯 쉽게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집중한다면 그만큼 값진 발견을 할 수 있다.
상당히 두껍고, 책값이 거의 5만원에 육박하니 쫌, 아니 마이 비싼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

익숙지 않은 곤충 학명, 화학물질 용어가 줄줄이 나오는 탓에 좀 낯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간의 인내심을 갖고 초반의 낯섦을 넘어서기만 하면, 훨씬 큰 “발견의 즐거움”을 선물하는 책이다. 사진과 그림이 많아서 실험과정 설명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이해가 잘 안되는 실험과정 설명은 그냥 건너뛰면 그만이다.

저자인 토머스 아이스너는 미국 코넬대학 석좌교수로 화학생태학 분야의 개척자라고 한다.
저자의 절친한 동료이자 저명한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O. 윌슨(<통섭>의 저자이며 최재천 교수의 스승)은 그를 “절지동물 분야의 점묘화가”라고 불렀다.
그 말마따나 저자는 최신 현미경과 화학분석장치 등으로 점묘화를 그리듯 곤충들의 행동방식과 분자 단위의 진화모습을 일일이 확인하고 종합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 책을 읽다보면 “곤충에 비한다면 하늘의 별도 지극히 간단한 구조체일 뿐”이라는 책 속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작은 개체 안에 이렇게 큰 우주가 담겨 있다니!


이 책에 따르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식물과 무척추동물, 그리고 미생물의 99% 이상이 화학물질을 이용해 움직일 방향을 정하고 먹이를 잡고 스스로를 방어한다고 한다.

얼마 전 TV <스폰지>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데, 혹시 파리 크기만한 폭격수 딱정벌레를 길가에서 발견하더라도, 절대로 손으로 잡지 마시라. 다친다. 누군가 건드리면 폭격수 딱정벌레는 섭씨 100도가 넘는 액체 폭탄을 순식간에 발사한다. 어디를 건드리든, 정확하게 공격자를 향해 발사한다. 심지어 등 위를 건드려도 마찬가지다.

  (## 오른쪽 위 사진은 폭격수 딱정벌레처럼 분비물을 내뿜는 채찍전갈로 저자가 했던 실험 장면. 채찍전갈을 핀셋으로 건드리자, 이 벌레는 핀셋 쪽을 향해 분비물을 발사했다. 아래 분홍색 종이는 용액을 머금은 반응종이로 희게 변한 부위가 분비물이 떨어진 곳이다)

이 벌레가 내뿜는 액체 폭탄은 뜨거울 뿐 아니라 아세트산과 카를린산이 섞인 독극물류다. 뜨거운 독극물을 뱃속에 품고도 이 벌레의 배가 터지지 않는 까닭은 뭘까. 놀라운 신체 구조 덕분이다.

이 딱정벌레처럼 청산가리를 뿜어내는 노래기를 저자가 해부한 결과 뱃속에는 두 개의 주머니가 있고 양쪽의 내용물이 서로 섞여야만 청산가리가 생산되는 방식으로 독극물을 품고 있었다. 곤충이 스스로를 방어하고 살아남기 위해 적응한 진화의 신비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곤충이 개발하는 ‘전략’은 화학물질만이 아니다. 이오나방, 스파이스부시 호랑나비 애벌레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가짜 눈을 이용한다.
나방을 쪼아 먹으러 다가온 새들은 포식자의 눈을 닮은 가짜 눈을 맞닥뜨리면 혼비백산해 달아나 버린다.









(# 왼쪽 사진은 이오나방이 평소에 쉬고 있는 모습. 나방을 쿡쿡 찌르면 오른쪽처럼 앞날개를 펼쳐 뒷날개의 가짜눈을 드러내 보인다)

스파이스부시 호랑나비 애벌레의 가짜 눈은 아주 특이하다. 동공이 삼각형 모양이어서 한꺼번에 모든 방향을 다 보는 것처럼 오묘하게 생겼다.
  위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스파이스부시 호랑나비 에벌레의 가짜 눈은 어느 방향에서 쳐다봐도 항상 시선이 마주친다. 이 가짜눈은 어느 방향에서 보든 자신을 노려보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듦으로서 공격을 사전에 막기 위한 장치다.

어디 그뿐인가. 플로리다거북딱정벌레는 개미가 아무리 공격해도 제자리에서 꿈쩍도 않는다.

이 벌레의 무기는 바닥에 찰싹 달라붙을 수 있도록 기름이 분비되고 6만개나 되는 다리 끝의 가시털이다. 저자가 위의 사진처럼 딱정벌레의 등에 왁스로 실을 붙여 추를 매달아봤더니 몸무게 13.5mg의 딱정벌레가 2g짜리 추를 매달아도 끄떡없었다. 자기 몸무게보다 148배나 무거운 무게, 사람으로 치면 몸무게 70kg인 사람이 13t이상의 무게를 감당하는 셈이다.

곤충의 세계 못지않게 저자도 매력적이다. 저자는 어렸을 때 옷걸이에서 나는 냄새만 맡고도 간밤에 할머니가 오셨다는 사실을 알아맞혔을 정도로 후각이 예민했다고 한다. 저자는 액체 폭탄을 발사하는 폭격수 딱정벌레의 포식자들이 받는 느낌을 알아보려고 딱정벌레를 입에 넣어보기까지 했다. 저자가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을 되레 먹어치우는 애벌레를 ‘적발’하기 위해 밤에 ‘잠복근무’를 했던 실험을 묘사한 대목은 코믹한 단편영화를 보는 듯하다. 자신이 지휘하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모토로 ‘우리는 우리가 내는 소리처럼 나쁘지 않다’를 내걸었던, 저자의 유쾌한 ‘딴소리’를 듣는 것도 즐겁다.


유머러스한 문체를 따라 낯설고 신기한 곤충 세계 탐험을 하다보면 도리 없이 곤충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르기오페 아우란티아 거미는 사마귀의 독니에 물리면 외과용 가위로 싹둑 자르듯 자기 다리를 잘라내 버린다. 사마귀가 움켜잡아서가 아니라 독을 느끼기 때문이다. 저자가 통증유발제로 알려진 꿀벌, 말벌의 독을 거미의 다리에 주입하는 실험을 했을 때에도 거미는 미련 없이 다리를 잘랐다. 그렇게 하지 못한 거미는 죽었다.

사람을 아프게 하는 물질은 곤충도 아프게 한다. 저자는 “스스로 제 다리를 잘라버리는 거미의 생리적 감수성은 인간의 감수성과 다르겠지만, 전혀 다르다고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곤충이라고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 위 사진들은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이며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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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의 귀재들, 곤충  토머스 아이스너 지음, 김소정 옮김
동물행동학과 생태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토머스 아이스너가 펼쳐 보이는, 아주 작고 놀라운 곤충의 세계. 반세기 동안 우루과이, 호주, 파나마, 유럽, 북아메리카 대륙을 넘나들며 관찰하고 실험하여 발견한 곤충들의 아름다움과 놀라운 생존 전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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