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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

만족

sanna 2006. 9. 1. 20:45
일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만족>을 쓴 저자가 연구실에서 행한 실험 결과는 이 순진한 기대를 배반한다.
버튼을 눌러야 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장치와 그렇지 않은 장치로 실험을 했더니 공짜 돈을 받는 것보다 평범한 버튼 누르기를 할 때 실험 참가자들의 뇌에서 선조체가 더 큰 활성을 보였다. 뇌에서 선조체 부위가 활성화돼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다량 분비되면 인간은 만족감을 느낀다.

한 사람의 노동의 성과만큼 맛있는 것은 없다. 뇌는 나태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저자는 “선택이 주어진다면 심지어 쥐들도 공짜로 뭔가를 얻기보다 그들의 음식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미국 에모리 대학에서 행동과학과 정신의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만족감을 “자신의 행동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감정”이라고 정의한다. 이 감정은 쾌감과 다르다. 복권에 당첨되는 행운으로도 쾌감을 느낄 수 있지만, 만족감에는 어떤 일을 하겠다는 의식적 결심이 전제되어야 한다.


저자는 형이상학적 이론의 나열 대신 돈이 많으면 만족스러울까, 맛있는 음식을 얼마나 자주 먹어야 만족스러울까, 운동과 섹스는 만족과 어떤 관계에 있을까 등 구체적인 소주제를 통해 만족의 메커니즘을 설명했다.


만족감을 느끼도록 뇌에서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것은 ‘새로움’이다. 근본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자주 새로운 놀라움에 자극 받는다.


저자는 이를 직접 알아보기 위해 가느다란 호스를 입에 문 실험참가자의 혀에 쿨에이드(향긋한 음료를 만드는 혼합분말상표)와 물을 불규칙적으로 뿜어주면서 기능자기공명영상(fMRI)기술로 뇌 영역의 혈액 변화량을 측정했다.

실험 결과 쿨에이드와 물 중 무엇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을 때 뇌의 선조체는 밝게 빛났다. 도파민은 예측할 수 없는 보상을 주는 새로운 것에 반응한다. 또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보다 그 이전, 즉 어떤 것의 성취를 기대하고 노력하는 과정에 있을 때 더 많이 분비된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도파민 신경세포의 양은 비슷하지만 사춘기 이후부터 꾸준히 줄어든다.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는 원리가 뇌에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신경과학 이론의 소개에 그치고 말았다면 단조로웠을텐데, 이 책의 장점은 발로 뛰어다닌 저자의 취재에 있다. 저자는 직접 fMRI 기계의 스캐너 속에 들어가고 요리사를 인터뷰하고 퍼즐 토너먼트 대회에 참여했으며 장거리 달리기 대회에서 의학 검진을 자원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만족하며 사는지를 알려고 쿠바와 아이슬란드 여행을 했고 성과 만족의 관계를 취재하러 SM(사도마조히즘) 클럽에도 다녀왔다.


심지어 저자는 오래된 관계에서 성적 만족을 불러오는 방법을 탐구하다가 자신이 아내와 가진 색다른 섹스의 경험까지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독자의 책 읽는 즐거움을 빼앗지 않기 위해 그 방법을 여기서 공개하진 않겠다. ^^

 만족 - 뇌과학이 밝혀낸 욕망의 심리학  그레고리 번스 지음, 권준수 옮김
우리 삶에서 만족감은 어떻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뇌과학적인 맥락에서 풀어보는 책이다.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뇌 안의 신경물질대사에 주목하면서, 돈, 음식, 운동, 섹스 등의 일상적인 소재로 '만족'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으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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