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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나도 ‘러너’였다.

3년 전 10km 대회부터 차근차근 도전해 2년 전엔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다. 내 방 책상 옆에는 하프 마라톤 완주 후 받은 금색 메달이 아직도 걸려 있다.

달리기는 내게 특별했다. 맹숭맹숭한 허벅지와 종아리가 근육의 단련을 통해 제법 쉐이프를 갖춰가는 걸 보는 것도 뿌듯했고, 스스로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게 되기도 했다. 잘 달리지는 못하지만, 늘 바깥의 기준에 견주어 나 자신을 평가하는 버릇을 버리고 나는 '나 자신의 최상'이면 된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하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한 2003년 1월 이전까지, 난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았다. 중고교 시절 800m 오래 달리기 조차 한 번도 완주해본 적이 없다.
그러던 내가 하프 마라톤이라니! 기껏해야 2시간29분 ('러너'들은 절대로 이런 경우 반올림해 2시간30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1분은 지구를 몇바퀴 돌 수 있을만큼 어마어마한 차이다)에 완주한 거였지만,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것처럼 우쭐했다.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

   (사진은 멋지다. 하지만 이런 포즈로 뛰다간 10m도 못가 엎어질 껄...)

...하지만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변화에 대한 저항은 끈질기게 우리를 유혹한다.

하프 마라톤 이후 풀코스 마라톤을 무리하게 준비하다 무릎을 약간 다쳤는데, 좀 조심하자 한 것이 하루 쉬고 이틀 쉬고 일주일 쉬고 한달 쉬고...-.-;

이런 상황을 합리화해야 나도 속이 편했던지..'사실 마라톤은 운동으론 좀 그래' '활성산소가 과다분비되면 폭삭 늙는다잖아. 마라톤 선수들이 쭈글쭈글한 것도 이유가 있지'...온갖 핑계를 다 대가며 점점 달리기와 멀어졌다.

결정적으로 몇 달 전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뒤로 나는 2003년 이전의 상황으로 완벽하게 복귀했다. 조금만 걸어도 피곤하고 지하철역이 조금만 멀다 싶으면 자꾸 길거리의 택시를 기웃대는....아,,,다시 운동이란 걸 할 수 있을까...


지난 주말, '큰 결심'을 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하고 점점 맞는 옷이 줄어드는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나자! 집 앞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겠다, 두 주먹 불끈 쥐고 러닝머신에 올랐는데....

정말 눈물이 나려고 했다. 숨이 가빠서 10분도 못 뛰겠는 거다. 빨리 걷기 10분 후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갔더니 이번엔 다리가 뻐근해서 힘이 들었다. 다시 쉬었다가 올라가고 또 쉬었다가 올라가고, 뛰다 힘이 들어 다시 걷고.....그래도 한때 '러너'였던 내가 이런 굴욕을 겪다니.....ㅠ.ㅠ

하지만 무엇보다 큰 변화는, 심폐기능과 근력의 퇴조보다 달리기의 그 단조로움을 견디기가 가장 힘들더라는 것....
이렇게 단조로운 반복적 행위에 무슨 기쁨이 있다고, 예전에 나는 ‘Runner's high’를 운운해가며 달리기를 즐겼을까....

생활에서도 그럴테지. 격랑 많은 굴곡을 헤쳐가는 모험보다 어쩌면 그날이 그날인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일, 작고 단순한 어떤 일을 날마다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더 힘이 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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