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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의 삶

지하철 역에서

sanna 2006. 8. 31. 19:29

아침 출근길 지하철역.

가방을 주렁주렁 든 아주머니가 내 앞에 걸어가던 젊은 남자에게 말을 걸려는 포즈로 다가가다 멈칫했다. 그 남자를 그냥 지나쳐보낸 아주머니가 나한테 다가와 구파발 방향이 이쪽이 맞냐고 물었다.


앞에 가던 젊은 남자 인상이 험악했던 걸까. 아니면 너무 바빠보였나.....

그가 승강장에서 몸을 반쯤 틀었다. 곱상하고 평범한 표정.
하지만 아주머니가 왜 멈칫했는지 알만했다. 귀에 낀 하얀 색 이어폰 줄, 밖으로 새어나오는 음악소리.
mp3 플레이어와 이어폰,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음악소리는 아주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했을 것이다.
“나 지금 바빠요. 말 걸지 말아요.”


나도 종종 mp3 플레이어와 이어폰의 도움을 받아 출

근한다.

붐비는 지하철 안. mp3 플레이어와 이어폰은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막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소음,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부담스러운 타인의 존재를 모두 몰아내고 1인분의 내 공간, 심리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주변을 차단해준다.


mp3 플레이어와 헤드폰 차림으로 출근할 때면 사람들을 주의 깊게 쳐다보지 않게 된다. 눈이 마주쳐 시선이 얽혀도 상대를 진짜로 쳐다보지 않는다. 스쳐 지나갈 뿐이다.
내가 처한 물리적 환경은 사람이 밀집한 지하철이지만, 내가 진짜로 속해있는 환경은 플레이어에서 들려오는 음악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생각이다.
투명막으로 만든 거품방울을 둘러싸고 물결 위를 둥둥 떠가듯 번잡한 통로를 ‘홀로’ 흐른다. mp3 플레이어와 이어폰을 타고.

미국 지하철의 iPod 광고. 잘어울리는 컨셉.
iPod와 함께라면 지하철에서 'one-man dance party'를 열수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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