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6년 만에 저자 소개 글을 쓰는 중.

호기롭게 맨 앞에 논픽션 작가라 써놓고 왠지 부끄러워 한참 동안 컴퓨터 주변을 관심 없는 척 오가며 깜빡이는 커서를 힐긋거렸다. 여섯 번째 펴내는 책이지만 출간 간격이 지나치게 성긴 탓에 나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하기가 영 쑥스럽다.

책을 펴낼 때마다 책 특성에 맞는 소개 글을 쓰려고 나름 노력했는데, 인터넷 서점에선 최근작 저자 소개가 예전 책들에 다 덮여 쓰이므로 예전의 소개 글이 다 사라진다. 온라인 시대엔 어느 책에 붙어도 어색하지 않은 간단한 저자 소개가 낫다고 결론 내면서, 번개같이 소개 글을 마치고. 재미 삼아 예전에 책마다 (이력 소개 빼고) 다르게 쓴, 이제 종이책 말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저자 소개를 모아보았다. ...저는 한때 저런 사람이었습니다.

[흥행의 재구성] (2005)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 (不狂不及)’지만, 나는 도무지 미쳐지지 않는(不狂)’ 기질 때문에 미칠 것 같은()’ 사람이다. 무엇에 푹 빠져 몰두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반면 호기심은 많으니, 세상을 두루 관찰하는 일을 택해 기자가 되었다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그나마 몰두했던 대상이 영화였다. 역시 기질상 영화광이 되진 못했다. 하지만 위로와 격려 혹은 도전이 필요할 때마다 의지하는 좋은 영화와 인연을 만났다. ‘미치지()’ 못했다 해도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선물인가.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2009)

툭하면 넘어지면서도 오래 걷기와 등산을 좋아하고, 별 재능이 없는 줄 알면서 글쓰기를 좋아하며, 잘 어울리지 못하지만 사람을 좋아한다.

살아 있는 동안 하고 싶은 일 100가지리스트를 몇 년째 만드는 중인데 산티아고 가는 길 걷기는 그중 3위였다. 인류학을 전공했고 17년째 직업 기자다. ‘인간의 거울이라 할 인류학 공부와 정보를 요리하는 기자의 경험을 결합해 나 자신에게 세상의 풍성한 결을 설명하고 싶고, 그게 다른 사람에게도 들을 만한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고 있다.

[내 인생이다] (2010)

생애 첫 기억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준다는 말이 있다. 내 첫 기억은 만 네 살 때의 일이다. 한 살 터울 오빠를 줄기차게 따라다니던 나를 청강생으로 받아준 시골 유치원의 관대한 원장 수녀님은 너도 밥값은 해야지싶었던지, 오빠가 졸업할 때 내게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씌우고 떠나는 언니 오빠들을 그리워하는 포즈로 앨범용 사진을 찍게 했다.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사진을 찍으러 마당에 나가야 하는데 도무지 신발을 찾을 수가 없어 신발장 앞을 정신없이 헤매던 순간이다. 결국, 오빠 졸업 앨범엔 신발 한 짝만 신은 채 곧 울 것 같은 표정인 내 사진이 실렸다

신화에서 신발을 잃어버리는 것은 곧잘 정체성의 혼란과 모험의 시작을 상징한다. 그래서 여태 나는 스스로 어떤 인간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물으며 헤매는 건가? 아마 평생 그럴 것 같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문지방 하나를 넘어 새로운 세계로 건너갔다. 명함의 타이틀이 나를 설명해주는 명사의 삶 대신 스스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만들어내야 하는 동사의 삶이 슬슬 마음에 들기 시작한다. 여전히 어디로 가야할지 잘 모르지만, 계속 탐구하고 체험하는 동사형 이야기꾼으로 살려고 한다.

[이상한 정상가족] (2017)

사람들의 행동에서 패턴을 읽어내고 사회현상을 관찰하고 어떻게 바꿀까 궁리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쓴 책들의 목록에서 보다시피 초지일관 한 우물을 파지는 못했다. 그때그때 관심이 꽂히는 영역에 뛰어들어 경험하고 질문하여 책을 써왔다. 여러 분야를 훑고 다녔지만, 꾸준히 몰두하는 주제는 사람의 개별적, 집단적 마음이 만들어내는 변화와 성장의 이야기다.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