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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좀 앓았습니다. 팔을 잘 쓸 수 없을 뿐 정신은 멀뚱멀뚱한 증세라 내리 빈둥빈둥 놀고 있는데, 블로깅을 하지 못한다는 게 계속 신경이 쓰이더군요.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닌데, 괜시리 가게 문 열어놓고 비워둔 기분이라 어찌나 뒷골이 땡기던지요. ^^;


며칠 놀며 읽은 책에 대한 수다나 잠깐 떨어볼까 해요. 고병권의 에세이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천명관의 소설 ‘고래’,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을 읽었습니다.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의 지은이 고병권은 제가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연구자들의 모임인 '수유+너머'(www.transs.pe.kr)의 대표입니다.
'대표'라는 말 대신 '추장'이라는 말에 성을 붙여 '고추장'이 되었다지요.^^
전 이 저자의 책 중 ‘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길’을 우연히 읽고, 저자가 '수유+너머’에서 진행한 니체 강좌를 듣기도 했습니다.
강좌에 출석한 날보다 빼먹은 날이 더 많았지만 그가 눈을 반짝이며 열정적으로 해설하는 니체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들어보지 않으면 모른답니다. ^^
참, 제 블로그 한 줄 설명 '아직 밟아보지 못한 천개의 작은 길' 도 '니체, 천개의 눈~'에 소개된 니체의 한 마디에서 따온 것이구요.
이 책은 저자가
그간 지면에 발표한 칼럼을 모은 책예요. 자유, 행복, 도덕과 같은 주제에서부터 빈곤, 한미FTA에 이르기까지 너른 범위에 걸쳐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은 책이죠. 주제는 익숙하지만 그의 생각은 익숙하지도, 뻔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시각, 뒤엎는 시각으로 읽는 이를 긴장시키는 것이 그의 글이 갖는 매력입니다.
지금 기억에 남는 대목은 ‘기억력’과 ‘건망증’에 대한 그의 생각이군요. 왜 ‘기억증’과 ‘망각력’이라고는 부르지 않는가 하는 저자의 질문을 받으며, 저도 '건망증'에 대한 자책을 관두고 '망각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하게 되었죠. ^^


꽤 많은 사람의 극찬에 호기심이 일어 사게 된 ‘고래’는 정말 ‘구라빨’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소설입니다.
‘붉은 벽돌의 여왕’으로 알려진 여자 춘희가 교도소에서 출감해 낡은 공장으로 돌아오는 첫 장면에서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물씬하죠.
그 뒤로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들은 시간대나 등장인물이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탁월한 입심 덕택에 책을 손에서 놓기가 쉽지 않답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유장하게 풀려가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이 언뜻 생각나기도 하더군요.
여성 3대의 이야기가 상당히 재미있지만, 근데 문제는 뒷심이 좀 딸린다는 거죠. 뒤로 가면 점점 황당해지고,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이런 생각도 들어요. 배경과 인물이 따로 논다는 느낌도 있구요. 그래서 책을 덮을 즈음이 되면 허탈해질 수도....그러나 어찌됐든 '거 참, 특이한 소설 한 편 잘 읽었다' 이런 느낌은 확실히 받으실 수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고래'가 유장한 세월을 거슬러 몇 세대의 인생유전을 변사처럼 해설하고 있다면,
마음’ 은 정 반대로 한 사람의 내면, 미묘한 잔주름까지를 들여다보는 심리소설이라고 해야 할까요.

과거의 상처, 죄책감으로 인해 스스로를 자신이 지은 자의식의 감옥에 유폐시켜둔 채 잔인한 세월을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저하고 망설이다 그런 머뭇거림 때문에 영 엉뚱한 말을 불쑥 내뱉어놓고 그런 자신을 책망하고 후회하는 마음결이 너무나 세세히 묘사돼 있어서, 간혹 소설 속 '선생님'을 따라 마음이 같이 울렁일 정도입니다. 전 아무래도 대범한 사람이 성큼성큼 개척하는 신천지보다 소심한 사람이 눈길을 주는 세상의 뒷모습에 더 마음이 끌리는 편입니다. 억울하게도 정작 저 자신은 '지나치게 대범하다'는 평을 더 자주 듣지만 말이죠.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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