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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

나는 학생이다

sanna 2007. 3. 20. 23:40

‘나는....이다’
이런 문장을 완성하라고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떤 단어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쉽지 않은 문제죠. 그러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 한번쯤은 던져봐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저자도 이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한동안 고민했다고 합니다.
저자가
‘나는 작가다’라고 말해도 너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여러번 올랐던,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이니까요.
혹은 '나는 혁명가다'라고 해도 말이 되죠.
10대 때 중국 혁명에 뛰어들었고 문화대혁명 때 유배를 당해 신장 농촌지구에서 16년의 세월을 보냈으며 마흔이 되어서야 복권돼 마흔 둘에 중국 문화부 부장이 되었다고하니까요.

그런데 올해 일흔세살인 이 노작가는 "나는 학생이다"라고 선언합니다.
저자가 ‘나는 학생이다’라고 선언하는 대목을 읽으며 저도 모르게 짧은 탄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저도 따라 "나도 학생으로 살래요"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

생각해보면, 말이 좋아 16년이지 그 세월동안 오지의 농촌에서 귀양살이를 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인생에 사계절이 있다면 그 중의 한 계절 이상을 흘려보내는 기나긴 시간이죠.
그러나 저자는 그 기나긴 공허와 고통을 어떻게 참을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고 합니다.
"위구르 언어 포스트닥터
과정까지 마쳤지. 준비 2년, 대학 5년, 석사 3년, 박사 3년, 포스트닥터 3년이면 딱 16년이니까 말야....”
듣기좋으라고 하는 허울좋은 대답이 아니더군요. 그가 '학생'의 자세를 삶의 태도로 견지하고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는 "배움을 지속함으로써 하늘을 원망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무위도식하며 세월을 허송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에게 배움은 "타인에 의해 결코 박탈당하지 않는 유일한 권리"였으니까요.

밑줄을 하도 많이 그어 다 읽고 보니 책 곳곳에 볼펜 자국 홈이 파였습니다 ^^;
책 겉장엔 중국의 대문호가 이 시대
젊은이들과 삶의 문제를 논한다, 뭐 이 비슷한 말이 적혀 있었지만, 저는 이 책을 젊은이보다는 중년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와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이보다 우환과 고통을 겪어본 중년쯤이 되어서야 일흔이 넘은 노작가가 말하는 인생론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될 것 같아요.

저자는 이 책을 4년 가량 심혈을 기울여 썼다는데, 과연 어느 한 대목 허투루 쉽게 툭 뱉는 듯한 말이 없습니다.
'학생'으로 살아가는 삶의 태도 뿐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한 저자의 조언도 귀기울여 들을만 합니다.
인맥 구축, 네트워킹..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하다고들 꼽는 덕목이죠. 전 별로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에다 '관리'도 못하는 주제이지만, 인맥 구축에 지나친 강조점을 두는 것도 싫고 '관리'를 잘 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미래도둑님이 언젠가 포스트에 썼던 '사람과 관계맺으려 하지 말고 방향과 관계를 맺으라'는 인용문을 열렬히 지지하는 편입니다.^^

저자 역시
인간관계를 대할 때 가장 좋은 자세는 "아예 인간관계라는 것을 잊고 관계학을 잊는 것"이라고 권고하는 군요.
관계란 정해진 것이 아니라 "파생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올바른 인간관계는 "애써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무심히 이루어지는 것이며 하나의 학문이나 기교라기보다 하나의 수양"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인간관계가 이상적이지 못하더라도
그대로 둔 채 신경을 끊고 천천히 기회가 올 것을 기다리라"고 권하면서 "어찌됐든 자기의 주관이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강조합니다.
인간관계야 어쨌든 "당신은 전력으로 일을 성사시켜야 하며, 반드시 그 글을 전력으로 써야 하며, 전력으로 야구를 해야 하며, 노래를 부를 때도 반드시 전력을 다해 불러야 한다"는 거죠.

전력투구....저자가 책 곳곳에서 강조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인생이란 생명을 한 차례 연소하는 과정"이고, 빛과 열이 제한돼 있을지라도 일할만큼의 열이 있다면 오로지 전력투구하고 충분히 연소해 그만큼의 열이라도 내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이죠.
그래봤자 실패하면 어떻게 하냐구요?
책 안의 숱한 명언 중 다음과 같은 말에 한번 귀기울여 볼까요...

"...사람들은 각자 자기에게 속한 기회가 있고 좌절이 있다. 자기에게 따르는 액운이 있다. 서구속담 중에 ‘운명이란 마치 피아노와 같아서 모든 것은 당신이 연주하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다.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어서 전혀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더라도, 당신은 침착하고 차분해야 한다. 그러면 최후의 승리는 당신에게 속할 수 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승리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당신은 적어도 노력했으며,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봐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그저 사나운 운명에 거만한 웃음을 지어보이면 그 뿐이다."


  모든 일에 실패하더라도, 사나운 운명에 '거만한 웃음'을 지을 마지막 기회는 남아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담대해지는 기분입니다. ^^ 전력투구해봐야 겠어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던 일에도 무모하게 덤벼보면서 말이죠. ^^

나는 학생이다 - 중국의 大문호 왕멍, 이 시대 젊은이들과 인생을 말한다  왕멍 지음, 임국웅 옮김
네 차례나 노벨문학상 작가로 거명된 바 있는 중국의 유명 작가 왕멍의 인생철학론.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부딪치게 될 모순과 함정, 그 안에서 어떻게 스스로의 해답을 구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존엄한 대답을 들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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