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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

일본문화의 힘

sanna 2007. 4. 17. 12:32
 아래 포스트에서 '하이쿠'에 대해 쓰다보니 예전에 써둔 서평이 생각나서요.
'일본문화의 힘' 서평을 뒤늦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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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는 한국 비빔밥과 비슷한 점이 많다.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밥은 중국, 형형색색의 나물은 인도나 티베트를 비롯하나 아시아 여러 나라에 해당하며 한국은 가장 중요한 맛을 결정하는 고추장이 아닐까. 일본이 하는 일은 큰 그릇에 이런 문화를 받아들여 비비기 전에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 스기우라 고헤이(杉浦康平)의 말마따나 일본 문화는 비빔밥이다.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고(수용성), 그것을 섞어(편집성) 체질에 맞게 바꿔낸다.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부르듯, 우리는 일본을 알면서도 잘 모른다. 한류 열풍으로 일본열도를 석권한 듯한 자부심이 만연하지만, 사실 일본은 과거 경제대국의 명성에 못지않은 문화강국이다. 오죽하면 일본의 문화적 저력을 설명하기 위해 GNP(국민총생산)에 빗댄 GNC(국민총매력·Gross National Cool)라는 개념까지 만들어졌을까.


  '일본문화의 힘'은 그래픽디자인부터 소설 패션 애니메이션 영화 건축 하이쿠 요리에 이르기까지 여덟 개 분야에서 일본 문화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힘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다루는 폭이 넓으면서도 구체적이고, 심층적이면서도 어렵지 않은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각 분야에서 손꼽히는 ‘일본통’인 저자들의 면면, 고른 수준의 글도 신뢰감을 준다.


비빔밥적 성향이 일본 문화의 본질이라면 세계에 진출해 일본을 알린 전위들은 역발상에 탁월했다.
1970년 패션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高田賢三)가 파리에 문을 연 부티크 이름은 ‘정글 잽’. 서양인이 일본을 경멸조로 부르는 말인 ‘잽(Jap)’을 아예 부티크 이름으로 썼다. 단점일 수도 있는 동양의 주변적 이미지를 장점으로 역이용하는 그의 발상은 패션 디자인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세계 패션무대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인일 미야케 이세이(三宅一生)의 디자인 개념도 옷감을 입체적인 몸에 맞추는 서양의 개념과 전혀 다르게 ‘한 장의 천’을 어떻게 걸칠 것인가, 옷과 사람 사이의 공간을 어떻게 만들고 이용할 것인가에서 출발한다.


일본의 소설에 대한 분석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일본 소설이 한국 소설시장을 점령하다시피 한 데 대해 트렌디한 소재와 감각적 문체 덕분이라고들 하지만 일본은 세계 유례없이 100년 전 창간된 순수문예지 ‘신초’가 통권 1200호를 기록하며 계속 나올 정도로 문학대국이다.


비빔밥처럼 섞고 받아들이면서도 자기 것을 어떻게 이어가는가.
대답은 일본의 전통문화 속에 있다. 일본은 3대 신궁 중 하나인 이세신궁(伊勢神宮)을 20년마다 부수고 다시 짓는다. 20년은 한 세대의 교체주기다. 경지에 오른 전문가가 죽기 전에 다음 세대와 함께 신궁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지음으로써 기술을 완벽하게 이전하고 수백년간 같은 모습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해체를 통해 보존하고, 뒤섞어 새 것을 만들며, 일탈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는 일본 문화의 힘을 읽다보면 어쩔 수 없이 우리 자신의 문화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일본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읽어볼만한 책이다.


일본 문화의 힘 - 세계는 왜 J컬처에 열광하는가  윤상인 외 지음
김봉석, 한창완 등 국내 전문가 8인이 8가지 분야에 걸쳐 쓴 일본문화 본격 해부서이다.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동양의 대표적인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일본의 문화의 각 분야에서 활약한 주역들, 이들 주역들이 보여준 아이디어와 철학, 역사, 그리고 사회문화적 배경 등을 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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