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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자주 다니는 길목에 그 유명한 '총각네 야채가게' 체인점이 얼마전 새로 문을 열었습니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매장 크기를 두 배로 키우고 거의 10명에 가까운 '총각'들이 공격적으로 장사를 하더군요.
밤에 학교 운동장을 돌러 나가면 하루 장사를 마치기 직전인 야채가게 총각들이 야채 바구니들을 둘러매고 남은 야채를 떨이로 팔러 오곤 했습니다.
저녁 운동을 나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지갑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던지, 요즘은 퇴근하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하철 역 입구에서 총각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지하철 역 입구에선 야채보다 주로 과일을 떨이로 싸게 팝니다.
총각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은 보기 좋지만, 동네마다 있던 작은 야채가게들이 다 문을 닫게 생겨 좀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편의점 체인 때문에 동네 구멍가게들이 사라졌듯, 브랜드와 규모, 편리함 앞에서 배겨날 영세 가게가 없겠지요.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총각네 야채가게' 바로 옆에 '형제네 야채가게'가 생겼습니다. 한 집 건너도 아니고 바로 옆집!
총각네에 들렀다가 "옆집이랑 무슨 관계가 있어요? "하고 물어보니 총각 한 명이 우는 소리를 합니다.
"관계는 무슨 관계요! 아이고, 저 집 때문에 아주 죽겠어요. 쫓아낼 수도 없고..."

거 참.....바로 옆 집에 가게 이름을 패러디해 문을 여는 배짱이 놀랍기만 합니다.
매일 얼굴을 마주칠텐데 불편해서 어찌 사나 싶어요.
며칠 뒤 냉장고에 붙이는 형제네 가게의 전화번호 자석이 집 현관문에 붙어 있더군요. 위 사진에서처럼 냉장고용 자석까지 총각네와 디자인이 똑같습니다. 야채가게의 '야'자를 활용한 디자인까지 그대로네요. ^^

뭔가 불공정 게임 같은 기분이 은근히 들어서 형제네 가게엔 들러본 적이 없는데, 엊그제 찾는 과일이 총각네에 없길래 재미삼아 형제네에 한번 들러봤습니다.
옆집과 가격 차이는 어떻게 되냐고 물어봤더니 "똑같죠, 뭐"하고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옵니다. 이런 방식으로 장사를 하는 당사자 마음도 편하지는 않겠지, 생각했는데....이것저것 묻다가 좀 깎아달라 어쩌구 했더니, "이것도 옆집보다 2천원 싼 거예요" 하시더군요. ^^
나오는 길에 간판 제목 말을 꺼내니 "진짜 형제예요"라고 대답하더군요. ^^;
그 분도 매일 총각네와 벌이는 무언의 신경전이 편하지만은 않을텐데...뻔히 눈총살 줄 알면서도 그런 방식을 선택한 '형제'들이 좀 안타깝기도 합니다. 참 먹고 살기 힘든 세상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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