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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잉카제국에 발을 들여놓다! 페루가 매혹적인 이유도 덧없이 몰락했으나 아직까지도 신비에 쌓인 제국 때문 아니던가. 리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약 1시간 걸려 쿠스코 Cuzco 에 도착했다. 중심가인 엘 솔 El Sol 거리를 따라 올라가면 잉카제국의 몰락을 그려 넣은 대형 길거리 벽화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쿠스코는 해발 3400m에 있다. 해발 2500m 이상의 고지대에 단시간에 도착했을 때 대부분 고산증을 겪게 된다고 해 미리 고산증 예방약인 다이아막스를 처방받았다. 약도 먹고 아주 느릿느릿 걸었지만 숨이 가쁜 건 어쩔 수 없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코리칸차 (Qorikancha 태양의 신전). 잉카인들의 신전인 이곳을 스페인 정복자들이 허물고 그 잔해 위에 산토 도밍고 교회를 지었다. 정복자들의 유산인 이 교회 안에는 잉카인들의 수난을 그린 벽화들이 전시돼 있다.
스페인이 점령한 뒤 제작된 종교화에는 태양신 문양이 숨은 그림처럼 꼭 들어가 있다. 예수의 발치에, 성모마리아의 옷자락 한 구석에. 그렇게라도 암호를 새겨넣으며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으려 했을 잉카인의 결연한 얼굴이 떠오른다. 


코리칸차의 석벽 유적. 잉카인들의 석벽 쌓는 솜씨는 대단하다. 지진이 났을 때 산토 도밍고 교회는 무너졌지만, 잉카의 석벽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부터 저렇게 서로 맞물리는 홈이 파였던 거라는데, 너무 현대적 건축자재 같아 믿기지가 않는다.

잉카인들의 석벽 쌓는 솜씨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게 석벽이 죽 이어진 거리에 있는 이 12각 돌.
모서리가 12개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문 화강암으로 쌓은 거라는데, 이음매가 어찌나 꼭꼭 들러붙어 있던지 얇은 종이 한 장도 들어갈 틈이 없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크다.

석벽은 아예 관광상품이 되었다. 잉카 로카 거리엔 맞은 편 석벽에서 이런 퓨마의 형상을 찾아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쿠스코 도시 전체가 이런 퓨마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참 벽을 노려보고도 결국 찾는데 실패했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저 모양이 보였다.

사진 찍는 걸 까먹었지만, 쿠스코에도 한인 식당이 있다! 고산증으로 어질어질한 상태에서 먹는 김치찌게 맛은 정말 별미다. 고도 때문에 쉽게 끓지 않아 오래 끓여서 맛있는 거라고 하는데, 내 생각엔 고산증이라는, 시식자들에게 듬뿍 쳐진 최고의 양념 덕택같다. ^^;

쿠스코의 중심인 아르마스 광장. 가장 활기찬 곳이자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몰려드는 곳이다. 여기서 노닥거릴 때 리마 대형 운송업체의 쿠스코 진출을 반대하는 중소버스 운영업자들의 가두시위가 한차례 쓸고 지나가기도 했다.
페루 거리를 돌아다닐 때마다 유난히 하늘이 눈에 띄었다. 어디를 가든 하늘이 두드러지게 푸르고 맑다. 고산지대라선지 구름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날씨가 변화무쌍해 여름인데도 겨울 점퍼를 들고 다녔지만, 햇볕은 피부가 아플 정도로 따갑다.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이 대성당 역시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시대의 신전을 허물고 그 위에 지은 것.

쿠스코는 작고 예뻐 느릿느릿 돌아다니기에 좋다. 시장에 가서 소금도 사고, 빵도 사고... 시간이 좀 더 있으면 주저앉고 싶은 곳. (고산증만 없다면. -.-; )  

쿠스코 근교에도 잉카인들의 유적이 많다. 삭사이와만 (Sacsayhuaman)은 쿠스코 동북부를 지키는 잉카인들의 요새 겸 제례의식을 행하던 곳. 6월엔 여기서 남미 3대 축제 중 하나라는 태양신 축제가 열린다.
커다란 돌들이 건물 2~3층 높이로 쌓여 퍼즐처럼 꽉 맞물린 채 길게 이어져 있다. 이음새는 역시 빈틈이 없다. 잉카인들은 석벽 쌓기에 거의 편집증적 열정을 지니기라도 한 것같다.  
석벽만 보면 얼마나 거대한 구조물인지 실감이 나지 않을 테지만, 옆 사진을 보면 돌 하나의 크기가 짐작갈 것이다. 돌 크기를 보여주려 일부러 찍었다. ^^;  돌 한 개의 높이가 2m는 훌쩍 넘는다.  
삭사이와만의 말 뜻이 재미있다. '배부르게 먹은 새'. 남미에서 단일 구조물로는 가장 큰 거라고 하던데, 스페인 정복자들이 건축 자재로 마구 뜯어가 지금 원래 석벽의 절반도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삭사이와만 옆엔 리오데자네이로의 거대 예수상을 본뜬 예수상이 쿠스코를 굽어보고 서 있다. 이곳에 정착한 팔레스타인인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세웠다고 한다. 거대한 잉카 유적 옆의 예수상이라...쿠스코를 굽어보는 황량한 언덕에서 예수와 태양신이 팽팽히 겨루는 듯한 느낌. ^^;

이후로도
바위를 깎아만든 유적인 켕코 Qenqo, 성스러운 샘이라 불리던 탐보마차이 Tambo Machay, 북쪽을 지키는 요새인 푸카푸카라 PukaPukara 등을 쭉 들렀는데, 돌들, 그 엄청난 돌들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산증 탓도 크다. 예방약도, 산소통도 별 소용이 없다. 고산증으로 고생하신 어머니는 고산증에 좋다는 코카차, 코카캔디를 다 섭렵했지만 별 무소용.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알콜을 적신 솜. 그 솜으로 관자놀이를 마사지하고 알콜 냄새를 계속 맡는 게 고산증 증세를 가라앉히는 데에 가장 효과적이다.

저녁엔 해발 2800m에 있는 우르밤바 계곡의 피삭 pisac 으로 이동했다. 피삭의 로얄 잉카 호텔.  지친 눈에도 어라, 예쁘네, 감탄이 나온다.  

내가 묵은 방. 방마다 같은 색의 문, 벽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시설은 영~ 아니올씨다 였다. 욕실은 습기가 빠지지 않아 눅눅하고 바닥은 어찌나 선득거리던지. 이럴땐 고단함이 약이다. 뭘 더 바래, 하는 심정으로 풀썩 주저 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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