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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꼭 해야 할 일은 뮤지컬 관람입니다.
지난달 런던에 들렀을 때 본 뮤지컬은 '빌리 엘리엇'. 원작은 2001년에 국내에서도 개봉됐던 같은 제목의 영화 인데, 이 영화를 아주 좋아했던 터라 언젠가 꼭 보리라 벼르던 뮤지컬입니다.
런던에 갈 때 비행기 표도 사기 전에, 인터넷을 뒤져 '빌리 엘리엇' 뮤지컬 할인티켓 한 장만 달랑 사두고 모든 준비를 마친 것처럼 얼마나 뿌듯했던지요~ ^^

'빌리 엘리엇' 뮤지컬을 공연하는 빅토리아 팰리스 극장으로 가면서 가장 궁금했던 건 영화의 그 유명한 마지막 장면을 뮤지컬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하는 거였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빌리 엘리엇'은 80년대 중반 영국 북부 탄광 마을에 살던 소년이 댄서가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마지막 장면은 천신만고 끝에 댄서가 된 빌리가 무대 위로 도약하는,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뒷모습이죠. '역대 영화 라스트 씬 베스트 3'를 꼽으라면 그 중 하나로 반드시 들어가야 할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그 장면을 뮤지컬은 어떻게 소화할 지가 너무 궁금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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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뮤지컬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영화와는 다른 길을 가는 거였더군요. 영화의 마지막 임팩트를 버리되 극 중간 쯤에 어린 빌리가 댄서가 된 미래의 자신과 함께 2인무를 추는 것으로 가름합니다. 이 장면 역시 절로 탄성이 나올만큼 아름답습니다. 뮤지컬 홈페이지에 그 장면을 잠깐 보여주는 비디오 클립 이 있습니다. 링크 걸어놨으니 맛뵈기로 한번 보세요.

어린 배우가 쉬지 않고 노래 부르고 춤추며 극을 이끌어가는 열정과 능력은 놀랍습니다.
발레 학교 오디션을 보는 장면에서 빌리 역을 맡은 소년이 'Electricity'라는 노래를 부르며 쉬지 않고 회전하는 춤 동작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보는 이들이 모두 잔뜩 긴장해 숨죽이고 있던 객석에선 마치 압력이 폭발하듯 일제히 '와!'하는 탄성과 함께 박수갈채가 터져나왔습니다.

깔깔대고 웃기도 하지만 몇번씩 울게도 만드는 뮤지컬입니다. 죽은 엄마가 나타나 빌리와 노래를 주고 받을 때마다 어찌나 눈물콧물이 나던지.... -.-;
엄마의 노래 중 여러번 반복되는 후렴구라서, 잘 못알아듣는 영어인데도 귀에 쏙 들어온 대목이 있었습니다.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언제나 네 자신이 되렴 (In everything you do, always be yourself)'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주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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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뮤지컬이 영화와 다른 대목에 강조점을 두어서인지, 영화볼 땐 잘 눈에 띄지 않던 대목이 인상깊더군요.

대처 정권 아래에서 열악해진 노동조건에 시름하다 탄광 광부들은 파업을 하며 경찰과 격렬하게 대치합니다.
그 와중에 빌리의 아버지는 어린 빌리를 발레 학교 오디션에 보낼 돈을 벌기 위해 파업에서 이탈하려 하고, 파업의 중심에 서 있던 자신의 큰아들과 격렬하게 다투게 되죠.
"우리에겐 미래가 없지만 이 아이에겐 미래를 만들어줘야 할 것 아니냐"며 무릎을 꿇고 우는 아버지. 반면 이 전선을 지키지 않으면 인간답게 살 길이 없다는 큰아들 토니의 주장도 절박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는 상황.

이 난감한 상황에 광부들이 나섭니다. 조금씩 돈을 모아 빌리의 오디션 비용을 만들어준 것이죠. 그냥 갈등을 마무리하는 스토리 전개였을 뿐인데 그 대목에서 난데없이 눈물샘이 툭 터져버렸습니다.

80년대 중반 탄광촌에서 사내아이가 발레학교에 간다니 얼마나 해괴망측한 일입니까. 아버지도 처음엔 권투가 아니고 발레를 배운다는 빌리의 말에 대경실색했으니까요. 그러나 비웃어도 시원찮을 판에 네가 틀렸다 비난하지 않고,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고 돕는 사람들의 아름다움!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선한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연민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테죠.
눈물을 닦으며 내가 보낸 그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적과 나의 구분, 흔들림없는 전선이 중요했던 그 때, 누군가가 '자기자신'이 되기위해 '대오'를 이탈하겠다고 나선다면 어떻게 했을지......연민을 배우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나이 먹는 일에 감사해야 할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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