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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일요일...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집안은 동굴같다. 동굴에 서식하는 동물에 걸맞게 종일 집에서 뒹굴다.
아파트 2층인 우리 집 창 밖엔 꽤 큰 감나무가 있다.
빗줄기가 제법 거센데 감나무 이파리들은 별로 흔들리지도 않고 빗물을 받아 가만히 흘려보낸다.
저 나무가 없었더라면 여기 어찌 살았을까 싶다. 이 아파트는 대로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정도라, 감나무가 없었더라면 우리집선 매일 대로를 오가는 자동차들의 행렬과 건너편 미장원 카페 치과 간판들이나 쳐다보고 있어야 했을 거다.
이파리가 무성한 여름도 좋지만, 눈 내리는 겨울날, 특히 주황색 감이 주렁주렁 열리는 가을날 감나무가 만들어내는 창밖 경치는 그만이다. 문제는 가을날 미처 따주지 못한 홍시감이 바로 아래 보도로 떨어져 재수가 없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감 폭탄을 맞기 십상이라는 점. 이때문에 가을만 되면 그 놈의 감나무 잘라버리라는 민원이 발생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랫집과 우리집은 달려나가 감나무를 변호한다. 지난 가을엔 보도 쪽으로 길게 뻗은 가지의 일부를 쳐내는 것으로 간신히 합의봤다. 삭막한 대로변 아파트를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큰 공신이 이 나무인데, 자르다니... 그 날로 이사간다.
감나무가 참 좋은 일을 하는구나, 흐뭇해진 순간 내 책상 옆에서 뿌리가 썩어가는 난초가 생각났다. 며칠 전 우유를 마시다 사람에게 좋은 우유니까 난초에게도 좋겠지, 생각하며 난초에게 우유를 먹였다. 그 뒤로 뿌리가 썩는 것인지 냄새가 진동한다. 식물을 잘 키우고 싶은 열망은 강한데 번번이 죽이기만 하는 내 무지와 서툰 손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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