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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눈보라

sanna 2008. 12. 31. 23:11
 '나희덕의 시배달'에 딸려온 멋진 플래시를 다운받는 방법을 몰라 그냥 글자만 옮겨놓습니다. -.-;
2008년에 후회하는 일이 많더라도, 시인의 말처럼 내년엔 다시 처음부터 걸어볼 수 있기를...
여기 들르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눈보라

                                            황지우


원효사 처마끝 양철 물고기를 건드는 눈송이 몇 점,

돌아보니 동편 규봉암으로 자욱하게 몰려가는 눈보라


눈보라는 한 사람을 단 한 사람으로만 있게 하고

눈발을 인 히말라야 소나무 숲을 상봉으로 데려가 버린다.


눈보라여, 오류 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사람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다


무등산 정경을 뿌옇게 좀먹는 저녁 눈보라여,

나는 벌 받으러 이 산에 들어왔다


이 세상을 빠져 나가는 눈보라, 눈보라

더 추운 데, 아주아주 추운 데를 나에게 남기고


이제는 괴로워하는 것도 저속하여

내 몸통을 뚫고 가는 바람 소리가 짐승 같구나


슬픔은 왜 독인가

희망은 어찌하여 광기인가


뺨 때리는 눈보라 속에서 흩어진 백만 대열을 그리는

나는 죄짓지 않으면 알 수 없는가


가면 뒤에 있는 길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앞에 꼭 한 길이 있었고, 벼랑으로 가는 길도 있음을


마침내 모든 길을 끊는 눈보라, 저녁 눈보라,

다시 처음부터 걸어오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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