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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뒷담화

sanna 2009. 7. 26. 01:14

뒷담화……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사실은 쑥대밭이 된 내 블로그를 너무 오래 혼자 지켜온 소설가 정유정 씨에게 미안해서 쓰는 글이다. 이달 초 내게 쏟아진 댓글 공격이 하필이면 내 블로그 맨 위에 떠 있던 그의 인터뷰 글에 주렁주렁 달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웃는 얼굴로 내 블로그를 지켜주었지만, 주인장이 어디 외국으로 튄 것도 아니고 손만 뻗으면 컴퓨터 닿는 곳에서 빈둥거리는데 그를 혼자 냅두는 건 더 못할 짓이다 싶었다.


하여 이것은 순전히 블로그 머리글 교체 용도로 쓰는 포스트.
머릿속이 텅텅 비어 뭘 쓸지도 잘 모르겠는데, 좌우간 뒷담화를 할작시면…


- 올해 6월30일 회사를 그만두었다. 난생 처음 다닌 회사를 17년8개월 만에 난생 처음 그만둔 것이다. 이래저래 복잡했던 공간을 떠나 혼자서 프리랜서로 글 쓰고 공부하고 조금 벌고 조금 쓰며 룰루랄라 살겠다고 그만두었다.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일인데 저지르고 보니 간단했다.


- 드디어 프리랜서가 된 7월1일. 네이버캐스트에 진출했다가, 내가 평생 받았을 비난의 총합보다 100배쯤 되는 비난과 욕설을 오전 반나절 만에 들었다. 난리가 난 글은 활활 불붙던 댓글들과 함께 삭제되어버려 어떤 종류의 해명이나 반박, 수정 등등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마음이 복잡했지만 그 이야기는 더 하고 싶지 않으니 여기서 끝.


- 오래 생각해왔다던 것 치고 퇴직 이후의 대책이 한심해 스스로도 황당하긴 한데, 또 나름의 재미가 있다. 내 인생 갖고 한번 놀아봐야지~. 2주 전 수유+너머에서 열린 미국 아나키스트 인류학자 초빙 세미나에 몇 번 가봤다. 무슨 뜻인지 거의 못 알아들었지만 (훌륭한 통역이 있었는데도!), 자신의 삶과 실천이 이론적 틀을 세우고 그에 따라 행동을 구성하는 게 아니라 행동을 통해 이해하고 행동을 통해 완성하는 방식이라는 말만 기억에 남았다. 알쏭달쏭한 그 말을 내 대책 없음을 합리화하는 구실로 삼기로 했다.


- 문제(?)는 실어증이라고 해야 할지, 실문증이라고 해야 할지, 하여간 일기든 블로그든 뭐든 글자가 쓰기 힘들어졌다는 거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아마 정유정 씨 마따나 우물 밖에 나와 보니 내가 너무 형편없는 개구리라는 걸 알게 되어서이기도 하고, 직장에서와 달리 쪼고 쪼이는 관계가 없어서이기도 하고, (가장 큰 이유인 듯한데) 뭐 그냥 글자로 쓸 만한 생각 자체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생활이 단순해지니 덩달아 생각도 간단해지고 사소한 것, 이를테면 시원한 매실차 한 잔에도 기분이 무쟈게 좋아진다. 지금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는....^^; 
하여튼 그냥 최근 읽은 책의 멋진 구절 소개로 갈팡질팡 뒷담화도 여기서 끝. 

"나는 이야기의 문을 깨뜨려 열고, 그 안에 든 것을 이녁한테 들려준다우. 그리고 내가 이야기를 끝내면, 모래 속에 휩쓸린 물건처럼, 바람이 그걸 가져가 버려"  -니사
<니사 -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 여성 이야기>에서

위의 구절 못지 않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신의 생애를 구술하던 니사가 하나의 이야기에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때마다 추임새처럼 넣던 다음 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살고 또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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