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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라진 떡집

sanna 2009. 9. 26. 00:38

얼마 전 집에서 큰 길 건너편 이면도로의 오래된 떡집이 문을 닫고 공사를 하는 걸 보았다. 내부수리를 하는 줄 알았는데, 며칠 뒤 그 자리엔 떡집 대신 중국음식점 간판이 내걸렸다. 떡집이든 중국집이든 내가 자주 들락거릴 가게들도 아니고 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며칠 지나도록 그 근처를 지날 때마다 사라진 떡집이 계속 눈에 밟힌다.
뭐랄까, 이 삭막한 시가지를 그나마 ‘우리 동네’라고 느끼게 해주던 지표 하나가 사라져버렸다는 서운함이랄까.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다. 난 떡을 좋아하지도 않고, 그 가게의 단골 고객도 아니었는데, 뭐가 서운하다는 거냐고….


사라진 떡집은 내가 이 동네로 이사 온 5년 전에도 이미 낡고 오래된 가게였다. 구력이 최소 20년은 넘어보였다.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신식 떡집에 비하면 간판이고 외관이고 후줄근하기 짝이 없었다. 비좁은 가게 한복판을 가래떡 뽑아내는 재래식 기계가 떡 하니 차지하고 있었고, 추석 무렵이 되면 송편을 사러 나와서 수다를 떠는 아주머니들로 바글바글했다. 내가 이 떡집에 들르는 경우는 추석 무렵 아니면 무슨 모임에 간식을 사가야 해서 들른 몇 번 안 되는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 이 떡집이 내게 특별하다고 생각했을 리도 없다. 바로 옆집이 옷집에서 약국으로, 먹는 집에서 다시 옷집으로 무수히 업종 변경을 하는 동안 꿋꿋이 버티던 떡집을 보며 ‘이 집 장사 잘 되나 보네’ 하고 가끔 신기하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떡집이 사라지고 난 뒤에 보니 알겠다. 조금만 낡아도 때려 부수는 재건축 재개발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길거리 가게들의 얼굴이 수시로 바뀌는 번잡한 도시의 풍경 속에서, 오래되고 허름한 떡집 하나가 있어주는 것만도 여간해선 정이 붙지 않는 도시의 한 귀퉁이를 ‘우리 동네’로 느껴지게 만들었다는 것을.


‘우리 동네’의 느낌이 없다면 낯선 사람들이 서로 가까이에서 사는 이 ‘군집생활’은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웃과 다 안면 트고 오지랖 넓게 사귀며 살고 싶은 마음은 또 없다. 만약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남의 집 밥그릇 수까지 다 알고 길을 걸어가면서도 끊임없이 인사를 나눠야 하는 ‘공동체’에서 살라고 하면 난 아마도 진절머리를 낼 것이다. 내겐 도시의 익명성과 무관심이 더 편하고 자유롭다. 다만 들고 나는 사람이 어떻게 바뀌든 오래도록 제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가게, 아무 때라도 들러 수다를 떠는 그 가게의 단골들, 내가 그 안에 섞이지 않더라도 그렇게 변하지 않는 풍경이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있고, 오래 버텨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기가 낯설고 쓸쓸한 곳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갖게 했던 모양이다.


떡집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중국음식점은 딱할 정도로 장사가 안 된다. 그곳이 떡집이었을 땐 가게 안에서 수다를 떠는 아주머니들이든 근처 학교에서 떡을 사러온 학생들이든 늘 사람들이 얼씬거렸는데, 새로 단장한 중국음식점은 너무 심하게 한산해서 안쓰러울 정도다. 그 집을 볼 때마다 ‘그러게 왜 떡집이 사라진 거야’하고 생각하는 것은 순전히 내 오버에 불과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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