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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얼굴 까먹으면 안돼요. 고마웠습니다…사랑합니다, 누나!”
                                 -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강동원이 사형 당하기 직전에 남긴 말-


사형수 강동원이 처형 당하기 직전 자리에서 일어나 보이지 않는 유리창 너머에 있는 이나영에게 “사랑합니다. 누나!”를 외칠 때, 객석 곳곳에서 ‘강동원의 누나들’이 훌쩍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형의 공포를 잊으려 애국가를 부르던 강동원의 머리에 복면이 씌워지고 목에 줄이 감긴 뒤, 강동원이 “애국가를 불렀는데도 무섭다”고 울먹일 때, 훌쩍 거리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내 눈에서도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 하늘은 왜 하필 저런 꽃미남을 데려가시고…ㅠ.ㅠ.
......................

이 영화가 주는 것(?)은 이게 전부다. 스러지는 꽃미남에 대한 애닮픔.
소설을 미리 읽어 그런가. 이 영화가 내겐 신통치 않았다. 아니, 소설을 미리 읽은 탓은 아닐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든 송해성 감독의 전작 <파이란>도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봤지만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파이란>에서 받은 감동과 송 감독에 대한 기대 때문에 이 영화를 보러 간 것인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하 우행시)>을 보면서도 울긴 했지만, 그 눈물은 ‘슬픈 장면’이라는 조건에 단순 반응하는 화학 작용에 불과했다. 절세미남 강동원, 점점 예뻐지는 이나영을 구경하는 ‘관람’이 즐거웠을 뿐, 이야기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무표정한 사람의 걸음걸이처럼 밋밋하게 흘러가는 <우행시>에 감정이입도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 오면서 생각해보니 뭔가 좀 찜찜했다.
영화주간지 <씨네21>에 실린 <우행시>의 원작자 공지영 씨와 송해성 감독의 대담이 생각났다. 이 대담에서 공지영 씨는 “너무너무 잘생긴” 강동원이 캐스팅됐다고 하길래 “속으로 야, 잘됐다. 이 사람이 죽으면 대한민국 여자들의 반은 사형제 폐지하자고 하겠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내 생각은, 전혀 아니올시다!, 이다.
내가 <우행시>를 본 곳은 강남 신사동의 씨네시티였는데 영화를 보고 난 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남자애가, 울어서 눈이 빨개진 여자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 근데 솔직히 강동원이 죽으니까 사람들이 울지, 유해진이 사형수였어봐라. 누가 울겠냐?”

꽈당~. 엘리베이터 안에 꽉꽉 들어 찬 사람들이 전부 공감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구석에 서있던 한 여자는 조그맣게 탄식했다. “아…. 강동원, 정말 너무 잘 생겼어….”

(엘리베이터 옆 벽면엔 유해진이 나오는 <타짜>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이 남자애는 그 포스터 때문에 ‘하필이면’ 유해진을 떠올렸던 게 아닐까….불쌍한 유해진…ㅠ.ㅠ..   문제의 <타짜> 포스터 --------->)

이 영화가 관객에게 남기는 가장 큰 여운은 엘리베이터에서 남자애가 한 말이 정확하게 대변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
관객은 사형제로 인해 한 젊은이가 죽어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강동원이니까 사형이 안타까운 것이다.
그 남자애 말마따나 사형수가 ‘비호감 외모’를 가진 유해진이었다면? 멜로도 성립되지 않고 사형에 대한 반감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공지영씨의 말대로 사형제 폐지를 말하는 영화일까? 사실은 정반대인 것 아닐까?

<우행시>에서 강동원의 사형에 마음이 미어지는 까닭은 그가 잘생겼고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썼으며 죄를 뉘우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전제 조건을 가져야만 사형제가 없어져야 할 제도라고 말할 수 있다면, 사형제 폐지 주장은 존립의 근거를 잃는다.
죄질의 경중, 뉘우침의 정도는 사형제 폐지 주장에서 핵심이 아니다. 무죄와 오판의 가능성도 물론 중요한 근거 중의 하나이지만, 무엇보다 죄질 여부와 무관하게 사람이 사람에게 그 같은 보복과 처벌을 가해도 되는가의 문제, 생명에 대한 경외를 어떻게 현실에 적용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공지영 씨가 자신의 말처럼, 이 영화를 통해 사형제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전파하고 싶었다면, 꽃미남 캐스팅에 반대했어야 했다.  <데드맨 워킹>의 숀펜처럼 비열하고 쓰레기같은 인간이 사형을 당하게 되었을 때, 그런 경우에도 사형제라는 제도는 옳은가 그른가, <우행시>에서 신부님의 말처럼 “사람이 변하는 기적같은 일”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던져줬어야 했다.

<우행시>는 강동원이 사형수이든, 불치병 환자이든, 크게 달라지지 않을 판타지 멜로 영화다. 사형제는 그저 이 영화에서 멜로의 감상적 배경화면일 뿐이다.
물론 영화가 목소리 높여 사형제 폐지를 주장할 필요는 없다. 강동원과 이나영의 연기를 폄하할 생각도 없다. <우행시>는 시나리오의 힘, 연출의 힘은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배우의 힘 (그것이 ‘완전소중’한 외모에 상당히 의존한다고 해도)만은 느껴지는 영화다.
다만, 나는 공지영씨나 송해성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사형제 폐지를 생각해보자고 말하고 싶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자칭 ‘민감한 소재’라고, ‘메시지’가 있다고, 현실을 그렸다고, 주장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속 들여다보이는 립서비스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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