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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까지나 엄지손가락만한 꼬마이고, 자라지 않는 난쟁이로 머물렀다…. 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나이에게 내 인생을 맡긴 채 장사꾼이 되어버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 영화 <양철북>에서 -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의 영화 <양철북>이 국내에 개봉된 때는 1988년이었을 것이다.

좀 추울 때였다고 기억하는데, 계절이 가을이었는지 겨울이었는지, 상영관이 명보극장이었는지, 대한극장 아니면 스카라 극장이었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원작 소설은 읽지 않았다. 몇 년 전 칸 영화제 작품상을 탔고, 원작자가 독일의 비판적 지식인인 귄터 그라스라는 것 정도가 <양철북>에 대해 내가 알던 전부였다.


영화보다는 영화를 함께 봤던 친구와의 추억이 강렬하다.
노동운동을 하겠다며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위장취업을 하기로 결심한 친구에게 내가 조촐한 환송회를 열어주던 날이었다.

저녁을 먹기 전 <양철북>을 함께 봤는데, 영화를 보고 난 뒤 친구가 “오늘 같은 날, 하필이면 이런 영화를 골랐냐”면서 나를 구박했다.


사실 나도 <양철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가진 얄팍한 교양으로는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 세상에 대한 거부로 성장하는 것을 멈춰버린 오스카가 미친 듯이 북을 두드리고 째지는 목소리로 소리를 지를 때마다 무지 신경이 거슬렸다. 오스카가 저보다 세배쯤 큰 여인들에게 치근대는 장면은 엽기적이었다.


명작이라던데…

뭐가 명작이야, 이해 안돼.

사실은 나도…

애가 뭐 저래, 징그럽게.

어른들이 저질러놓은 짓에 저항하려고 성장을 거부했다잖아, 나도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쳇, 넌 벌써 어른이야, 임마.

아냐…. 우리가 어른이 되면 지금의 우리를 철없다고 기억할까…


잡담을 술안주삼아 떠들면서 우리는 곧 영화를 잊었다.
절친한 친구가 공장으로 떠나기 하루 전날이었던 그 날, 우리는 영영 헤어지는 사람들처럼 침울했고, 그런 시절이 서러웠고, 꽤 울었던 기억만 남아 있다.


오래된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가 최근 자서전을 펴내면서 자신이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의 나치 친위대에서 복무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은 고백을 듣고 나서다.


도대체 왜 이제야? 그의 때늦은 고백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이다.


노벨문학상을 탄 세계적 작가. 소설가로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발언을 서슴치 않았으며, 독일인에게 역사를 직시하라고 촉구했던 양심적 지식인 귄터 그라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고백은 더 충격적이다.


뒤늦은 고백이 책을 팔기위한 마케팅 수단이라는 언론의 비난은 졸렬하다.

78살의 나이에 17살 때 저지른, 아니 그것도 저질렀다기보다 그 당시엔 어쩔 수 없었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숨겨옴으로써 결과적으로 ‘과오’가 되어버린 과거를 고백하는 까닭이 책을 팔기 위해서라니.
동의 못한다. 그렇게 쓴 기자에게 당신 같으면 그렇게 하겠냐고 묻고 싶다.


또 본인은 끝까지 침묵했는데 어떤 기자가 파헤치는 바람에 과거가 백일하에 드러난 거였다면, 지식인의 위선적 행태를 경멸하며 혀 끌끌 차고 별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왜, 그는 이제 와서 과거를 고백할 결심을 하게 됐을까.

그라스가 직접 한 말로만 알고 싶었다. 기사에서 부연설명을 다 떼고 직접 인용으로 전달된 그의 말만 모아봤다.


“그 일은 내 삶에 수치심을 남겼다. 나는 죄책감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오랫동안 말하고 싶었지만 억눌렀다. 나 자신도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없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그 같은 사실을 담아두고 있었다.”

“고백할 적당한 시점을 찾지 못했고, 문학적 형태로 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10대 시절의 나치 사상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나치 친위대에서 복무했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았으나 전쟁이 끝난 뒤 수치스러운 감정이 들어 괴로웠다”

“젊은 날 세상 물정 모르고 한 행위에 대한 부끄러움이 이후 줄곧 나를 짓눌렀으며, 그것은 나의 ‘주홍글씨’였다”

“나치 친위대 복무 사실은 아내 말고는 자식들도 몰랐다”

“나는 나의 과거를 항상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 나라의 작가로서, 시민으로서 했던 일들이 나치시대 동안에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과 반대되는 것이었다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었다”

“나를 심판하고자 하는 이들은 심판하라”


주홍글씨처럼 과거를 잊은 적이 없다는 그의 말에 일말의 진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악덕을 스스로 지우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악을 고백하고 합당한 처벌을 받음으로써 악행에서 풀려나는 것. 또 하나는 더 많은 선을 베푸는 것을 통해 자신이 ‘악인’이라는 끔찍한 기억을 서서히 지워나가는 것.

그라스는 후자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결국 기억을 완전히 지우는 데에 실패했고,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일생 최대의 과업을 해결하기 위해 뒤늦은 고백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라스가 불쌍해진다. 그라스와 <양철북>의 오스카 사진을 나란히 두고 보니, 두 사람이 겹쳐져 그라스 안에 오스카가 보이는 듯 하다.

성장을 정지한 채 기를 쓰고 북을 두드려대는 소년 오스카.
그 소년을 세상에 내보낸 그라스도 과거에서 풀려나는 방법을 찾는 대신 너무나 수치스러운 과거를 기억에서 지우려고 기를 쓰며 일생을 북치기 소년으로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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