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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때문에라도 난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요” (사오리)

“너로서는 그게 당연한 결론이야...하지만 나도 한마디만 한다면, 난 너를 참 좋아한단다” (히미코)

- 영화 <메종 드 히미코>에서 딸 사오리와 아버지 히미코의 대화 -


참 따뜻한 영화. 행복을 가장하는 가짜 평화 대신 넘어설 수 없는 벽, 불화, 오해, 상실과 갈등을 모두 끌어안고도 온기가 느껴지는 독특한 영화다.


너무 예쁘고 날씬한 남자배우 오다기리 죠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뗄 수 없었던.....역시 꽃미남이 좋긴 좋다.....^^


27살에 홀몸이 된 엄마를 보고 자란 딸 사오리는 게이 임을 커밍아웃하고 직장과 가정을 버린 뒤 게이바 마담으로 살아간 아버지 히미코를 평생 용서할 수 없었다. 돌연 사라진 히미코는 게이 양로원을 차렸고 암으로 죽어갈 때 딸 사오리와 대면해 처음으로 자신들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게 왠 뜬금없는 대답인가.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딸 사오리에게 아버지의 대답이 너를 참 ‘좋아한다’니.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모범답안인 "너를 보고 싶었다" "떠날 수 밖에 없었지만 널 사랑했다" 혹은 "널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등등.....대신,'좋아한다'니....그것도 자신의 온 인생을 걸면서 말하는 것도 아니고 과거야 어쨌든 간에 지금 그렇다는 투의 현재진행형 어법으로....

하지만 이렇게 뜬금없는 대답, ‘한순간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는 격정의 토로보다 사실은 더 말이 되는 이 가라앉은 화법, 그 앞에 '~에도 불구하고'가 생략돼 있는 듯한 '좋아한다'는 말, 그 말에 담긴 요란하지 않고 강제하지 않되 깊디깊은 마음이,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이다.

어머니가 마흔살이 되던 무렵부터 게이인 히미코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계속 만나서 즐겁게 어울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더라도 사오리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 어머니가 세상을 뜨기 직전 딸인 자신을 남편 히미코가 돌아온 것으로 착각하고 무척 밝아졌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오리로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비록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한다 해도, 사오리는 아버지의 인생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된다. 게이 임을 숨기고 은행 지점장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와이셔츠에 꽃무늬 자수를 놔가면서까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으려 했던 게이 양로원 친구들을 통해, 여자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쳐보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다던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아버지의 갈망과 아버지의 삶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

게이인 아버지 히미코 역시 딸 사오리에게 용서를 빌지 않는다. ‘직장과 가족을 버리고 음지에서 게이로 살아온 삶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딸의 직설적인 질문에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노”라고 말하며 되레 딸을 타이른다. “질문이 서투르구나”.

다시 내처 묻는 딸의 질문, ’날 사랑한 적이 있느냐' '보고 싶어 눈물 흘린 적이 있느냐'....히미코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히미코는 말한다. "난 너를 좋아한다"고.  "지금" 너를 좋아하고 있다고.....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어도, 가까이 갈 수 없다 해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해도, 용서받기 어렵고 나 역시 용서를 빌기 힘들다 해도, 나는 너를 좋아할 수 있다..... 위선의 포장이 전혀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진심이다.


사오리와 하루히코 (오다기리 죠)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사오리는 아버지 히미코의 애인 하루히코에게 강렬한 호감을 갖지만, 이성애자인 사오리와 동성애자인 하루히코는 끝내 섹스조차 할 수 없었다.
하루히코는 직장 상사와 홧김에 자버린 사오리에게 말한다. “너 말고 그 남자가 부러웠다”고.
둘이 연인이 되기엔 뛰어넘기 어려운 결정적인 장벽이 있다. 두 사람이 버스정류장에서 헤어지는 장면에서 하루히코가 “앞으론 볼 일이 없겠군”하고 말할 때, 나이트클럽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생각났다. "앞으로 소식을 듣지도 말고, 더 이상 만나지도 말고, 그런 뒤에라면 마음이 말해주겠지...."
정말 그럴까.


하지만 두 사람은 다시 만난다. “사오리가 너무 보고 싶어, 피키피키피키!”와 같은 요술 주문으로.

섹스를 할 수 없는 사이여도,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여도, 그들은 여전히 서로 좋아할 수 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전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도 이 담담한 온기는 여전했다.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 처녀 조제와 사귀던 남자는 끝까지 헌신할 줄 알았는데, 힘들다며 도망친다. 도망친 츠네오는 다른 말로 변명하지 않는다. "이별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사실은 단 하나다. 내가 도망친 것이다"라고 털어놓는다. 무릎이 꺾여 통곡하는 그가, 밉지 않다.


조제 역시 절망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는다. 할머니도 없고 혼자서 살아가게 되었지만, 조제는 누추하지 않다. 단정한 차림새로 혼자서 장을 보고 고등어를 구워 밥을 먹는다.

<조제....>를 볼 때, 조제가 혼자 밥을 먹기 위해 고등어 접시를 들고 방바닥에 털썩 떨어지듯 주저앉는 마지막 장면이 너무 마음이 아파 울면서도, 감독이 고마웠다.
조제가 헤어지기 전에 츠네오에게 했던 말처럼, “혼자서 바다밑을 데굴데굴 굴러가듯 살아가게 되었지만....그것도 그런대로 괜찮은” 조제를 보여줘서.


모든 상실은 아프다. 누구도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너를 좋아할 수 있다.
사라진 사람 때문에 여전히 아프고, 상실의 이유를 이해하진 못해도, 받아들일 수는 있다. 불행한 관계, 깨어진 사랑 안에서도 여전히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런 무한한 긍정 때문에,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서 별 수 없이 울게 된다. 절대로 세상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지만, 되레 불편하고 어두운 모습을 자꾸 보여주지만, 그래도 끝까지 지워지지 않는 따뜻한 기운, 그런 온기가 몸 안에 서서히 퍼져가는 듯한 울음.....


나오는 사람들이 모두 잊기 어려운 독특한 캐릭터라는 점도 <메종 드 히미코>의 남다른 점이다.

루비, 야마자키도 좋았다. “멍청하면 어때, 즐거우면 되지”라면서 늘 웃던 루비. 볼이 빨간 루비가 퉁명스러운 사오리를 보고 "늙은 호모와 퉁명하고 못생긴 처녀 중 누가 더 환영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냐"고 물어볼 때 웃겨 죽는 줄 알았다. (루비 사진을 봐야 이 캐릭터가 이해가 될텐데...아~ 내 컴터엔 왜 DVD 플레이어와 화면캡처 기능이 없단 말이냐......ㅠ.ㅠ)
“죽고나면 드레스가 안어울리는 나 자신을 보고 슬퍼질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죽을 때 입을 드레스를 만들어두었던 야마자키. 그 옷을 입고 사오리와 함께 실컷 춤추고 놀던 야마자키가 침대에 떨썩 쓰러지면서 “드레스의 정조를 이렇게 버리다니”라고 말할 때, 어찌나 귀엽던지.
^^


히미코 역시 인상적이고 멋진 캐릭터다. 터번을 머리에 두른 차림으로 늘 우아하고 도전을 허용하지 않는 듯한 카리스마 넘치는 태도로 등장한 히미코는, 아무리 굴욕적인 상황에 처한다 해도 위엄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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